2015. 5. 18. 05:56ㆍ가보고픈 곳
-서도역(書道驛)-
“혼불”의 무대(舞臺) 남원일대를 다녀왔다. 아침부터 추적대는 비를 맞으며 답사(踏査)를 강행했지만 보람이 컸다. 지리산(智異山) 두류실(頭流室) 조용섭 선생의 지리산 이야기와 청국장 가루가 가미(加味)된 커피는 그 맛이 특이했다.
흐린 날씨지만 웃비가 내리지 않아 선생의 안내로 산책로를 걸어본다. 먼발치로 보이는 지리산 산(山) 내음이 성큼 다가오는 것 같았다. 십여 분 거리의 짧은 산책로다. 수양산(首陽山) 그늘이 강동(江東) 팔 십리를 덮는다더니 지리산은 모든 것을 품고 있었다. 자연(自然)이 살아 숨 쉰다. 솔숲과 대숲에 일렁이는 바람이 청량(淸涼)하다. 발에 밟히는 낙엽들이 푹신 거린다. 오월이라 이팝나무와 불두화도 한창이다. 이런 곳에 살고 싶은 충동(衝動)마저 느낀다.
만복사 폐사지(廢寺址)에 서서『금오신화(金鰲新話)』만복사저포기를 이야기하고, 당간지주(幢竿支柱)와 약사여래(藥師如來), 금강역사(金剛力士)로 추정되는 석상(石像) 등을 설명했다. 남원 땅의 한(恨) 서린 역사도 곁들여 풀었다.
아! 만인의총(萬人義塚)…, 15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 섬진강(蟾津江)을 거슬러 오른 왜군(倭軍)이 진주성 점령(占領) 후 남원으로 진격(進擊), 남원군민 만(萬)여명이 무참히 쓰러진 남원성 전투(戰鬪)의 처절(悽絶)함과 구국정신(救國精神)에 울컥한 심정(心情)을 가눌 길이 없다.
이번 답사는 문학기행(文學紀行), 최명희『혼불문학관』이 빠질 수 없다. “혼불”은 1930년대 암울(暗鬱)했던 시기 남원 땅 매안 이씨가(李氏家)의 삼대(三代) 종부(宗婦)와 거멍굴 사람들의 이야기다.
효원 아씨가 대실에서 매안으로 신행(新行)오는 이야기와 생피 붙었던 강모가 사랑했던 강실을 두고 남만주로 떠났던 역(驛)이 서도역이다. 촌(村) 동네라는 것이 거기서 거기지만 무려 세 군데나 서원(書院)이 있었다니,
1934년 부산의 영도다리, 구포다리, 남원의 서도역이 동시대(同時代)의 산물이었다는 것은 이 지역의 중요성을 짐작하고도 남았다.
텅 빈 역사(驛舍) 대합실엔 흔적(痕迹)을 남기기 위해 던져둔 돌멩이들만 가득하다. 이리(익산)와 여수(麗水)로 뻗어있는 철로(鐵路), 오지 않는 기차(汽車), 고장 난 신호기, 정적(靜寂)마저 감돈다. 그나마 오래된 벚나무 한그루가 그늘을 드리우고 역사(驛舍)를 지키고 있어 다소나마 위안(慰安)을 준다. 눈 내리는 겨울역사(驛舍) 대합실(待合室)에 톱밥 난로(煖爐)가 이글거리고, 봍은 기침하는 촌로(村老)의 이야기가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정경(情景)들을 그리며 애꿎은 소주병만 비우고 왔다.
<사적 제349호인 남원 만복사지(南原 萬福寺址) 전경>
<만인의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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