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2. 8. 18:48ㆍ야소의 하루
흐리고 때때로 보슬비.
아침먹고 고향 가서 성묘하고, 대산서 식당 개업한 명자누님 찾아보고, 호암 이병철선생 생가와 일붕사 들렀다가 자골산을 넘어 귀가하다.
오래간만에 봄을 재촉하는 보슬비가 내렸다. 의령 자골산 임도에서 내려다본 운해.
비가 오더라도 1mm이하로 적게 올 것이란 예보여서 날씨가 궂었지만 성묘길에 나섰다.
하지만 비는 한때 내릴 것이란 예보와 달리 수시로 내렸고, 산에 오를 때에도 계속 내려 혼자 가서 성묘를 했다.
고향 성묘올 땐 꼭 들러라는 명자누님이 대산에 있는 조그만 식당을 인수, 어제 개업했다기에 찾아보고 왔다.
대산은 이선호의 고향. 친구가 통화하면서 의령의 명소 중 호암 이병철선생 생가가 귀가길 가까이 있다기에 들렀다.
호암 생가는 삼성그룹의 창업자이자 한국경제 발전을 이끈 대표적 기업가인 호암 이병철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넓은 들판의 야트막한 산 아래에 자리잡은 생가동네는 여느 농촌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호암생가는 선생 조부께서 전통한옥으로 손수 지었고, 선생은 유년기는 물론 결혼해 분가하기 전까지 이집에 살았다고 한다.
일자형 평면 형태의 생가는 그동안 몇차레 증 개축을 거쳐 은은하고 고고한 멋을 풍기는 오늘의 모습으로 단장됐단다.
현재의 생가는 안채 사랑채 대문채 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담한 토담과 바위벽으로 둘러싸여 외부와 구분되고...
주위에는 울창한 대숲이 조성되어 운치있는 경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풍수지리에 의하면...
이 집은 곡식을 쌓아놓은 것 같은 노적봉(露積峯)형상을 하고있는 주변 낮은 산의 기(氣)가...
산자락 끝에 위치한 생가 터에 그 혈이 맺혀 있어 그 지세가 융성할 뿐만 아니라...
멀리 흐르는 남강(南江)의 물이 빨리 흘러가지 않고 생가를 돌아보며 천천히 흐르는 ....
역수(逆水)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명당 중에 명당이라고 알려져 있다.
옛날 부(富)의 상징이었던 광이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 명당 터에서, 같은 산청군의 신등면에서 오셨다는 가족과 함께...
우리 부부끼리 방문기념으로 몇컷 찍었다.
금오공대 다니는 아들이 무척 대견스런 엄마, 그리고 할머니와 손자!... 이런 3대 모습이 너무 보기좋다.
옛날 부잣집은 자체 우물을 갖고 있어 낯선 풍경은 아니지만 돌색깔 등 뭔지 모르지만 분위기에는 걸맞지 않은 것 같다.
넓은 대지에 고고한 멋을 풍기는 단아한 우리 전통양식의 한옥! 요즘 사람들의 눈으로 봐선 별 것이 아니겠지만...
선생의 생전, 특히 유년기를 보냈던 그당시 사람들의 눈으로 보아선 대단히 컸었던 집이었을 것이다.
생가로 오가는 골목에는 눈에 확 띄는 한옥도 있었다. 이 동네는 부잣집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부자동네로 알려지면서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자 주차장과 화장실 등 편의시설도 잘 갖춰져 있었다.
봄을 재촉하는 보슬비가 간간이 내리긴 했지만 나들이 하는데 크게 불편할 정도는 아니였다.
일붕 서경보스님이 세운 일붕사를 찾았다. 스님의 다비식에 취재차 왔었던 때 이후론 처음이다.
일주문 앞에서부터.... 옛 모습과는 크게 달라져 있었다.
가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일붕사는 여느 사찰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일붕스님 역시 그랬다.
내세보다는 현세에... 현실에... 정치와 사회에... 사회복지사업에 관심이 많았고 집착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성철대종사나 월하종정과는 여러 면에서 비교되는, 또다른 큰스님이었다.
보다 적극적이요 현실적인 스님이었다. 사회복지사업 중 하나로 일붕실버랜드를 조성한 것도 그렇다.
봉황산 깎아지른 절벽 밑에 조성한 일붕사도 스님의 성향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한눈에 봐도 일반 사찰에서 보는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지세 지형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다비식에 왔었었을 때, 박사학위 최대 보유자로 기네스북에 올랐다는 말을 들었었는데...
이번에 와서 보니 일붕사가 동양 최대의 동굴법당으로 영국기네스북에 등재돼 있다고 한다.
스님 사후에도 계속 큰 불사가 이뤄져 예전과 크게 달라져 있었다.
거대한 돌탑들만 해도 그렇다. 아마 동굴법당 불사할 때 깬 돌들을 쌓아 만들었을 것이다.
하늘을 찌를듯이 송곳같이 날카로운 다층석탑은 그당시 있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사찰 주변 풍경은 겨울이라 삭막하지만 그나마 운무가 끼어 그런대로 볼만했다.
대웅전은 동양 최대의 동굴법당답게 그 규모가 엄청났다. 마치 딴 세상에 들어선 것 같았다.
내가 보긴 적막한 분위기인데, 예불드리는 사람들은 어떠한 기분일까?
높은 절벽에 바싹 붙은 절이어서 공간 구성에 여유가 보이질 않는다. 그런 만큼 이색적이다.
당연한 것이지만, 대웅전 앞뜰도 협소하다.
일붕스님이 꿈에 봤다는 그 암벽의 지장보살이 멀리 희미하게 보인다.
극락암은 높은 곳으로 500m쯤 더 올라가야 한다. 그곳은 스님의 다비식이 있었던 곳이다.
가는 길 옆 아래에는 부도들이 줄지어 서있고, 가는 길도 포장돼 있었다.
다비식날엔 인산인해였지만 길이 없어 오를 땐 아주 불편했었다. 당시 누구는 헬리곱터를 타고왔다고 들었다.
그런 골짜기에 터를 넓게 닦고 극락암을 세웠다.
대웅전인 극락보전. 자못 웅장하게 보인다.
공간 배치도 특이하다. 둑을 쌓아 연못을 만들고 물 위에 대웅전을 세웠다. 일붕사 특유의 양식이라 할 것이다.
소아는 이곳 불전함에 평소보다 많은 돈을 넣었다. 사실 푼돈이 없어서 그랬던 것이다.
극락왕생을 안내하는 등이어서 그런지 화려한, 많은 등이 어둠을 내치고 있었다.
산신각
??
극락암은 봉황산 정상 가까이 세워졌다. 눈 아래로 짙은 구름이 깔렸다.
일붕사 경내.
봉황대 안내문.
기도하는 곳이였던 것 같다.
일붕스님 부도탑
봉황루는 스님이 좌선하던 절벽 위에 서있다.
스님이 좌선하던 절벽 위에서 내려다본 일붕사.
일붕좌선대란 글자를 크게 새겼다. 좀 유치한 것 같다. 하지만 이런게 일붕식이다.
밑에 보이는 도로는 벽계관광지로 가는 길이다.
절벽 밑에 설치한 계단과 난관.
소아, 전망이 꽤 볼만하다고 했다.
그곳을 떠나 벽계계곡을 갔다.
이젠 유명 관광지로 탈바꿈한 벽계계곡의 궁유저수지는 한때 야초가 향어낚시하러 많이 찾앗던 곳이기도 하다.
좌측 건너편, 산자락이 물속으로 빠져드는 곳이 내가 좋아했던 명포인터였다.
한여름에도 찬 물이 흘러내린다는 찰비계곡엔 얼음폭포가 생겼다.
요며칠간 날씨가 포근해 두껍게 얼었던 얼음도 다 녹았건만 이곳 얼음은 여전한 것 같다.
사진으로는 실감할 수 없지만 실제 밑에서 보는 얼음폭포는 볼만했다.
계곡을 따라 나있는 임도를 타고 자골산 능선을 올랐다. 자골산과 한우산 사이에 있는 벽계삼거리이다.
능선 일대는 진달래 군락지여서 봄에는 특히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하지만 오늘은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능선 일대는 안개가 짙어 채10m도 보이질 않았다.
용감한 것인지, 무식한 것인지...그런 길을 하이빔과 비상등을 켜고 넘어왔다.
해발 800m쯤 될 것 같은 능선은 구름인지 안개인지..가려서 보이질 않는다.
에스키모의 돔형 얼음집같은 이런 집은 무얼까??
아자촌! `아름다운 자굴산자락의 촌락'이란 긴 이름의 첫 글자를 딴 이름으로 좀 귀엽지 않나??
남명 조식선생의 시비도 길목에 서있었다. 선생의 시가 의미하는 것은 자굴산 풍광이 그만큼 좋다는 뜻일 게다.
일전 둘째딸에게 부탁한 책을 예상보다 빨리 오늘 받았다. `Away from her' 번역 단편소설인데, 보곤선 크게 실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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