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 26. 07:20ㆍ그때 그시절
-복조리 -
섣달 그믐날 알바생들이 복조리를 팔려왔다. 조릿대 특유의 냄새가 좋고 연두색을 띤 복조리에 봄물이 담긴 것 같아 만 원을 주고 한 쌍을 샀다. 거의 해마다 왔는데 한 이태동안 복조리 파는 학생들이 보이지 않았다. 조리는 조릿대(山竹)을 가늘게 쪼개어 엮어 만든 것으로 돌이나 니를 가려내고 쌀을 이는 도구이다.
쌀을 이듯이 복(福)을 가지고 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문 앞에 조리를 걸어 한 해의 복을 빌었던 세시풍속(歲時風俗)이 남아 있음이 반갑다.
복조리는 방문의 안쪽 편 우측 위에 걸어 둔다. 이때 그 안에 동전을 하나 넣어 둔다. 조리는 쌀을 일 때 쓰는 조리가 해지면 꺼내 사용하였으므로 대개 일 년 내내 걸어 놓지는 않았다.
지난시절 명절(名節) 때는 집에서 떡을 쪄 먹었다. 도랑사구에 쌀을 불리고 조리로 쌀을 이는 작업과정을 지켜보면 그 재주가 참으로 신통했다. 손목만 좌우로 까딱이면 쌀알이 조리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쌀 불린 것을 말려두었다가 도구통에 빻아 채로 친 가루를 시루에 담고 팥고물을 한 켜씩 넣어 떡을 쪘다. 그때 그 시절은 모든 것이 홈․메이드였다.
복조리는 농경문화(農耕文化)의 주된 가치인 쌀을 이는 도구로 복의 의미가 담겨있다. 복조리는 일찍 살수록 길하다고 믿었다. 복조리 값은 복을 사는 것이라 깎거나 물리지도 않았다. 산업화로 인해 농경문화에서 벗어났고, 이미 쌀에서 돌 자체를 걸러낼 필요가 없어 조리를 사용하는 집은 거의 없다. 옛 생각에 구입한 복조리가 참하다고 조카 녀석이 가져간다기에 형제농장에서 가져온 마른 꽈리 한 꼭지와 같이 주어 보냈다.
<복조리>
―할머니 이야기-
내가 어렸을 땐 복조리가 있었단다.
초하루 새벽에 찾아오는 복조리 장수를
할머닌 새해 첫 해돋이보다 더 크게 반기셨단다.
대나무 복조리를 식구 수대로 사들여서
안방에 대청마루에 고이 걸어두시고는
타고난 복만이라도 채워지길 비셨단다.
봄바람 불어오면 제비처럼 날아들까
할머닌 복조리를 둥지인 듯 바라보고
귀한 복 깃들일 날만 손꼽아 기다리셨단다.
―신현배(1960~ )
*복조리 장수. 1920년대
<복조리 사라 외치니 새해오리까?>
“붉은해 동이 터오고
새벽 닭이 울었다 새해오리까?
아니 한박휘 해가 도랐으니 새해오리까?
복조리 사라외치니 새해오리까?
호사한 아기들 세배하러 오고 가며
널뛰는 색씨 붉은당기 날르니 이 또한 새해오리까?“
*위는 잡지 《삼천리》 제90권 1호(1937년 1월 1일)에 실린 박세영 님의
"신년송"이란 시의 일부입니다.
복조리(국악동요)
복사시오 복을사시오 행복의 복을 사시오
웃음도 가득 가득 집집 마다 만복을 선물 선물 합니다
사랑의 복조리 행복의 복조리 땀방울 복조리 풍년의 복조리
성공의 복조리 행운의 복조리 푸른꿈 복조리
복사시오 복을 사시오 행복의 복을 사시오
무병이 가득 가득 여러분의 건강을 선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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