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잊을 수 없는 아픔, 그 현장

2015. 1. 17. 08:12가보고픈 곳

2015.1.12.

 

화천에서 평화의 댐은 멀지 않다.

오래 된 기억이지만 서울이 수장되는 것을 막으려고

온 국민이 성금을 내어 만든 댐

그 모습이 궁금했다

산길을 돌고 돌아 민통선에서 몇번의 군사적 점검을 받고 찾아간 평화의 댐

 

평화의 댐(平和의 dam)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동촌리의 북한강에 위치한 댐이다.

2차 완공 후의 현재 길이는 601m, 높이는 125 m이며 최대 저수량은 26억 3천만t 이다.

북한의 금강산댐  건설에 따른 수공(水攻)과 홍수 예방을 위해 1987년 2월에 착공하여1989년 1월에 1차 완공(당시 높이 80 m)된 뒤,

2002년부터 2단계 증축 공사를 하여 2005년 10월에 최종 완공되었다.

평상시에는 물을 가두지 않는 건류댐으로 운영되고 있다. 댐 위로는 지방도 제460호선이 지나간다.

 

출처 위키백과

 

 

세계평화의 종

탄피 일만관으로 만들었으며 현재의 종은 9,999관으로 통일이 이루어지는 그 날 나머지 한 관으로 만들어진  날개는 완성된다고 한다  

 

 

 

통일을 기원하는 염원의 종

나무로 만들어 울리지않는 종, 침묵을 깨고 힘차게 울리는 그날을 그려 본다

 

 

 

비목공원

한 청년의 죽음과 전쟁과 역사의 아픔을 아름다운 시로 노래로 만든 역사의 현장

 

비목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 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1967년 작곡된 ‘비목’은 방송 프로그램을 하던 작곡가와 PD의 의기투합에서 시작된다.

당시 TBC(전 동양방송) 음악부 PD로 근무 중이던 한명희는 방송 일로 자주 만나던 작곡가 장일남으로부터 신작 가곡을 위한 가사 몇 편을 의뢰받는다.

그때 한명희가 내놓은 것이 직접 만든 한 편의 시(詩)였다.

장교 출신으로 비무장 지대에서 군 복무를 했던 한명희에게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었다.

그가 복무했던 곳은 백암산 계곡 비무장 지대. 어느 날 잡초가 우거진 백암산 기슭에서 무명용사의 녹슨 철모와 돌무덤을 발견한다.

무덤에는 개머리판이 거의 썩어 있는 카빈총 한 자루가 꽂혀 있었다.

이름도 없이 홀로 외로이 죽어갔을 총의 주인이 가슴 아팠던 한명희는 그 카빈총을 주워왔고, 깨끗이 손질을 하며 그 혼을 위로했다.

이 마음을 담아 시를 썼다.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6·25 때 월남한 실향민으로서 전쟁의 비극을 직접 몸으로 겪었던 장일남에게 한명희가 건네준 이 시는 바로 자신의 아픔과도 같았다. 그대로 선율을 짓기 시작한 작곡가는 그날 밤을 꼬박 새웠다. ‘비목’은 그렇게 탄생했다.

작곡가는 우수의 감정을 불어넣어 적막에의 두려움과 전쟁의 비참함, 그 때문에 더욱 간절한 향수로 곡을 승화시켰다.

소프라노가 아닌 메조소프라노가 부르게끔 톤을 낮춘 작곡가의 선택 또한 빠질 수 없다.

‘비목’의 낮고 풍성한 울림은 한국전쟁에 대한 ‘비가(悲歌)’로 꼽히기에 충분했다.

“달밤에 순찰을 돌면 격전지에서 쓰러진 전사자들의 절규가 허공에 돌아다니는 기분을 느끼며 소름이 돋을 때가 많았습니다.

궁노루 울음소리조차 이름 없는 병사들의 넋이 외치는 절규 같았지요.”

한명희는 ‘비목’을 설명하며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었다.

장일남 역시 생전에 전쟁의 아픔과 두려움을 토로하곤 했다. ‘비목’은 이런 노래다. 과거인 것 같으면서도 지금도 진행 중인….

현대사의 비극인 6·25 전쟁은 단순히 현충일과 6월 25일 날짜로만 존재하는 과거가 아니다.

동족상잔의 아픔이고, 애국심 하나로 사랑하는 가족을 뒤로한 수많은 애국선열과 국군용사의 넋이 살아 숨 쉬는 현재의 모습이다.

아마 통일이 되는 그날까지 ‘비목’은 그 아픔을 헤집는 역할을 할 것이다.

평안한 우리들의 오늘을 위해 기꺼이 귀한 목숨을 바친 이 땅의 호국영령들에게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린다.

 

출처  매일경제

 

 

 

 

 

 

 

출처 : 구름위의 하늘
글쓴이 : 여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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