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양쪽 산은 대문 젖혀..서호음선생벽/왕안석(송)~명시 감상 142

2014. 6. 4. 09:21좋은 말 글

書湖陰先生壁(서호음선생벽)

-호음선생의 집 벽에 적다

                                                  왕안석/송 

茅檐長掃靜無苔(모첨장소정무태) : 띠집 처마는 늘 말끔히 쓸어 이끼 한 점 없고

花木成畦手自栽(화목성휴수자재) : 꽃과 나무는 두둑 이뤄 손수 가꾼 것이라

一水護田將綠繞(일수호전장녹요) : 한 줄기 물은 밭을 감싸 녹색 띠 두르고

兩山排闥送靑來(량산배달송청래) : 양쪽 산은 대문 젖혀 푸른 빛 보내 오네           (번역; 한상철)

 

* 湖陰先生(호음선생) : 왕안석의 이웃에 살았던 양덕봉(楊德逢)의 별호.

* () : 이랑. 두둑. 두렁. 고대에는 50( 이랑) 1畦라 했다.

*  排闥(배달) : 문을 열어젖히다

* 왕안석은 만년에 벼슬에서 물러나 강녕江寧으로 돌아간 , 불교를 배우며 시와 함께 지냈다. 이때의 왕안석에 대해 황정견黃庭堅은

 “荊公暮年作小詩, 雅麗精絶, 脫去流俗(형공은 말년 들어 소품을 많이 썼는데, 고상하고 아름답기 그지없어 속세를 떠난 듯했다).” 적었다.

남송南宋의 시인 증계리曾季狸 역시,荊公絶句妙天下(형공의 절구는 천하에 으뜸이다)”라고 면서,

 “絶句之妙, 唐則杜牧之, 本朝則荊公, 此二人而已(절구의 빼어남으로 말하자면, 두목杜牧과 송의 왕안석王安石 사람이 있을 뿐이다).”라고 했다.

* 왕안석王安石 (송 1021~1086)

자는 개보介甫, 호는 반산半山, 형국공荊國公에 봉해졌다.

서강西江 임천臨川 사람으로 북송北宋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이며, 저명한 문학가로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명이다.

그는 관원의 집안에서 태어나 인종仁宗 경력慶曆 2(1042) 과거에 4등으로 급제하여 진사가 되었다.

가우嘉祐 3(1058) 시국에 관한 상소를 올려 개혁을 요구했다.

1069 신종神宗 참지정사參知政事가 되어 청묘법苗法, 농전수리법農田水利法, 모역법募役法 신변법新變法을 시행했고, 1070년에 재상이.

신법 토지개혁과 관련된 영향이 지주계급 그와 상관된 관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지식인들의 반대까지 겹쳐, 1074년과 1076 차례 직무에서 파면되었다.

신종神宗 사후, 사마광司馬光이 신임 재상이 대부분의 신법이 폐기되었다.

변법 실패 후에는 강녕江寧으로 물러나 지냈다. 《왕임천집王臨川集》과 《임천집습유臨川集拾遺》가 전한다.

* 해설 출처; 다움 까페 '한시 속으로'

*  아래 그림은 근현대 중국화사 사치류(謝稚柳)<치자화개(梔子花開)> 성선(成扇). 2014. 06.02 다움 블로그 청경우독에서 인용. 

 

출처 : 竹田문향
글쓴이 : 한상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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