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5. 31. 10:25ㆍ좋은 말 글
-천마산(天馬山), 중·동구 산복도로-
<천마산 산복도로에서 보는 부산항의 모습>
며칠 전 황원장의 주선으로 천마산 산복도로 일대와 중·동구문화센터 서너 군데를 둘러보았다. 천마산 산복도로에 있는 찻집은 다문화 가정에서 운영하고 있었다. 꾸밈새가 없는 분위기가 괜찮았다. 충무동 선창가를 바라보니 북양 트롤선을 탔던 동생 생각이 났다. 차(茶) 한 잔을 마시고 중구 산복도로에 있는 금수현 음악 살롱에 앉아 영도대교와 부산항을 내려다보았다. 1970년대 초 덕원공고에서 교편(敎鞭)을 잡은바 있어 누구보다 이 일대(一帶)의 상황을 잘 안다.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간 금수현 선생의 집. 6,25 한국전쟁 당시 이름깨나 날리던 명사들의 집합소. 넓은 마당과 부산항을 바라보는 전망(展望)이 그저 그만이었던 집. 일체(一切)가 무상(無常)이었다.
동구는 요즈음 산복도로 르네쌍스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부산고등학교 뒤편 산복도로 바로 밑에 자리 잡은 청마(靑馬)를 기리는 자그마한 공간이 무척 인상적(印象的)이다. 돌아가며 화가(畵家)들의 그림을 전시하고 있단다. 청마의 시(詩) 몇 편이 걸려있다. 김 소운(金素雲) 선생의 수필(隨筆) '외투(外套)'가 나를 반긴다.
외투(外套)
김 소운(金 素雲)
…… 벌써 10여 년 채 15년까지는 못 되었을까? 하얼빈서 4,5백 리를 더 들어간다는 무슨 현이라는 데서 청마 유치환이 농장 경영을 하다가 자금문제인가 무슨 볼 일이 생겨 서울을 왔던 길에 나를 만났다. 2,3일 후에 결과가 시원치 못한 채 청마는 도로 북만(北滿)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었다. 역두에는 유치환 내외분, 그리고 몇몇 친구가 전송을 나왔다. 영하 40 몇 도의 북만으로 돌아간다는 청마가, 외투 한 벌 없는 세비로 바람이다. 당자야 태연자약일지 모르나 곁에서 보는 내 심정이 편하지 못하다. 더구나 전송 나온 이 중에는 기름이 흐르는 낙타 오버를 입은 이가 있었다. 내 외투를 벗어주면 그만이다. 내 잠재의식은 몇 번이고 내 외투를 내가 벗기는 기분이다. 그런데 정작 미안한 일은 나도 외투란 것을 입고 있지 않았다. 기차 떠날 시간이 가까웠다. 내 전신을 둘러보아야 청마에게 줄 아무 것도 내게 없고, 포켓에 꽂힌 만년필 한 자루가 손에 만져질 뿐이다. 내 스승에게서 물려받은 불란서제 '콩쿠링' 요즈음, '파카'니 '오터맨'따위는 명함도 못 들여놓을 최고급 만년필이다.
당시 6원하는 이 만년필은 일본 안에서 열 자루가 없다고 했다. "만년필 가졌나?" 불쑥 묻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청마는 제 주머니에서 흰 촉이 달린 싸구려 만년필을 끄집어내어 나를 준다. 그것을 받아서 내 호주머니에 꽂고 '콩쿠링'을 청마 손에 쥐어 주었다. 만년필은 외투도 방한구도 아니련만, 그때 내 심정으로는 내가 입은 외투 한 벌을 청마에게 입혀 보낸다는 기분이었다. 5,6년 뒤에 하얼빈에서 청마를 만났을 때, 그 만년필을 잃어버리지 않은 것이 고마웠다. 튜브가 상해서 잉크를 찍어서 쓴단 말을 듣고, 서울서 고쳐서 우편으로 보내마고 약조하고 '콩쿠링'을 다시 내가 맡아 오게 되었다. 튜브를 갈아 넣은 지 얼마 못 되어 그 '콩쿠링'은 쓰리가 채갔다. 아마 한국에서 한 자루밖에 없을 그 청자색 '콩쿠링' 만년필이 혹시 눈에 뜨이지나 않나 하고 만년필 가게 앞을 지나칠 때마다 쑥스럽게 들여다보곤 한다.
<왼쪽은 유치상, 가운데 유치환, 오른쪽 김소운, 1930년>
<산복도로에 있는 유치환 우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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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네>
김말봉 시, 금수현 곡, 박인수 테너
새모시 옥색치마 금박물린 저 댕기가
창공을 차고나가 구름속에 나부낀다
제비도 놀란양 나래쉬고 보더라
한 번 구르니 나무끝에 아련하고
두번을 거듭차니 사바가 발 아래라
마음의 일만 근심은 바람이 실어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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