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크너가 남긴 9개의 교향곡 중에서 가장 유명한 대표작이며,「낭만적」이라는 표제가 붙여져 있듯이 수수한 기쁨, 맑은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그것에 황홀해진 무아(無我)의 경지가 나타나 있다. 브루크너는, 맑고 깨끗한 음의 세계를 교회당에 울려 퍼지는 파이프오르간의 거룩한 울림 속에 잠겨서 찾아냈는데, 먼지가 없고 부정하지 않은 순진무구한 그의 음악 세계와 그의 음악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갖고 있지 않고는 이해할 수가 없다. 브루크너가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 제 4번 「낭만적」은, 부르크너가 50세 때인 1873년부터 1880년에 걸쳐 빈에서 작곡되었으며, 1881년 2월 20일에 유명한 리히터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제 1악장은 숲의 조용한 속삭임 위에 호른이 울리고, 깊은 숲의 모습이 나온다. 폭풍이 찾아와 한 때 숲은 술렁거리지만, 또 원래 모습으로 돌아간다. 제 2악장은 만가(挽歌)로, 슬픔의 서정일 것이다. 제 3악장은 농부의 무곡, 제 4악장은 나타난 주제가 여기서 소용돌이치고 융화되며 그리고 끝맺는다.
별명이 'Romantische'여서 인지도 모르지만... 밑의 교향곡들이 모두 'moll'인데 비해 이곡은 장조이다. 성격적으로도 밝은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다. 정말 브루크너의 교향곡 중에선 가장 '낭만적'인 선율을 자랑한다. 이 작품이 브루크너를 설명하는 거의 모든 해설서의 기본을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면, 브루크너의 교향곡의 특색이라고 나열하는 것의 대부분이 여기에 있다. 브루크너 리듬. 4박자 리듬인데, 한박, 한박, 셋잇단으로 두박. 상상이 가시는지? 3악장 시작에 기본 리듬이다. 그 다음 브루크너 휴지(pause). 이것은 브루크너 교향곡 거의 전체에 드러나는 부분이지만... 트레몰로로 시작하는 1악장. 역시 4번에 있다. 그러나 진정 4번이 로맨틱한 이유는 각 악장마다 고운 선율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제1악장(Bewegt, nicht zu schnell) 1악장에서 현악 트레몰로를 깔로 나오는 혼의 선율, 그 다음엔 플룻이 가세한다. 그 다음엔 오케스트라 전체가 나타나면서 앞에서 설명한 브루크너 리듬과 함께 트럼펫이 나타난다.목가적이란 말이 딱어울린다. 브루크너의 '전원'정도, 베토벤의 전원과 다른 점은 베토벤이 들판에서 전원의 아름다움을 느낀 즉시 베껴두었다가 나중에 정리한 것이라면, 브루크너는 그 감정을 고스란히 가지고 예배당에 들어가 작곡을 한것이라고 생각하면 차이점을 설명한 것이 되겠다.
제2악장(Andante quasi Allegretto) 2악장은 만가(挽歌)로, 슬픔의 서정일 것이다. 펑펑 우는 슬픔이 아니라 되새기면서 조용히 삭히는그런 슬픔의 느낌이다. 현악기가 주도가 되어 나타나지만,관악기가 아련함을 더해주는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
제3악장(Scherzo.Bewegt-Trio. Nicht zu schnell. Keinesfalls schleppend-scherzo) 3악장은 옛날 중세의 기사들의 출정식 분위기의 트럼펫의 울림으로 시작한다. 제1주제가계속 반복되면서 사이사이에 다른 악상들이 나타나는 전형적인 스케르초이다.
제4악장(Finale. Bewegt, doch nicht zu schnell) 대개 브루크너의 4악장은 어렵다고 들 한다. 이유는 개운하지 않은 끝맺음 인데, 그런 면에선 4번의 끝은 훌륭한 끝맺음을 가지고 있다. 이미 3번의 초고에서 선보인 기법이지만, 현의 트레몰로까지 가세하여 신비한 느낌으로 끝을 맺는다. 철저하게 '로맨틱'한 분위기이다.
[브루크너의 교향곡에의 초대]
서양음악사를 살펴보면 후세에 길이 남을 만한 훌륭한 작품을 남기고서도 생전에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한 천재 작곡가들이 많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안톤 브루크너역시 이러한 작곡가 중 한사람이었다. 오늘날 브루크너는 그의 교향곡들을 통해 베토벤 이후의 가장 위대한 교향곡 작곡가들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지만, 당시에 그의 교향곡들은 비평가들의 혹독한 비판의 대상이었다. 특히 바그너의 숭배자였던 브루크너는, 19세기 말의 음악계를 뒤흔들었던 바그너와 브람스, 표제음악과 절대음악, 그리고 감정미학과 형식미학 간의 논쟁에서 공공연히 바그너의 편을 드는 바람에 음악평론가 한슬릭의 미움을 사게 되었다
브루크너의 교향곡은 당시 비엔나의 영향력 있는 비평가들이 퍼 붓는 공격의 제물이 되곤 했는데, 가장 주된 비판은 그의 교향곡들이 모두 천편일률적으로 똑같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브루크너의 모든 교향곡은 베토벤 교향곡 9번의 1악장이라는 평가도 있었는데, 이것은브루크너의 교향곡들이 대부분 베토벤 교향곡 9번의 1악장 처럼 현악기의 조용한 트레몰로로 시작되어 점차 크레센도되고 상승되면서 장엄하게 시작된다는 것을 비꼬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흔히 '브루크너 개시'라 불리며, 셋잇단음표가 주종을 이루는 '브루크너 리듬' 과 함께 그의 교향곡의 특징적인 면이다. 이밖에도 브루크너의 교향곡들은 형식 면에서도, 미완성인 9번을 제외하면 모두 4악장제를 취하며, 1악장과 4악장은 세 개의 주제 집단을 사용하고, 중간에 느린 악장과 스케르쪼가 들어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적인 면만을 보고 브루크너의 모든 교향곡들이다 똑같다고 말하는 것은 그의 음악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평가일 뿐이다. 음악의 세부적인 면을 살펴보면 각 교향곡들은 주제의 기본적인 처리 방식이 다를 뿐만 아니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그 양식도 상당한 변화를 겪어 화성과 전조의 기술은 더욱 혁신적으로 변모하고 대위법과 코랄의 사용에 더욱 능숙해지고 있음을알 수 있다. 브루크너의 초기 교향곡과 후기 교향곡을 비교해서 들어보면 그 음악적 표현의 차이를 현저하게 느낄 수가 있다. 브루크너를 겨냥한 당시의 비난들은 오히려 브루크너음악이 지닌 대담성과 현대적인 화성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브루크너에 대한 당시의 평가가 아무리 근거 없는 것이었다 하더라도 작곡가 자신은 상당히 심각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브루크너는 교향곡을 완성한 뒤에도 수없이 개작을 되풀이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비평가들의 혹평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브루크너는 상당히 꼼꼼하고 완벽주의적이며 겸손한 성품의 소유자로서 항상 자기 자신의 작품에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개정의 과정을 되풀이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아무튼그의 끊임없는 개작 덕분에 브루크너의 교향곡들은 여러 판본들이있어서, 브루크너 사후에 오레스, 하스, 노바크 등이 파트 악보 등을 조사해서 각기 악보를 출판했다. 판본에 따라서 아주 다른 곡이되기도 하기 때문에, 브루크너의 교향곡을 들을 때는 어느 판본을사용했는지를 알아두는 것이 중요하다.
브루크너는 초기의 습작 교향곡 두 곡을 포함해서 모두 11곡의 교향곡을 남겼다. 브루크너가 작품 번호 조차 붙이지 않았던 교향곡 f 단조는 브루크너가 린쯔의 지휘자인 오토 키츨러에게 작곡을 배우고 있을 무렵에 작곡한 습작이다. 그 다음에 작곡한 d단조의 교향곡에 브루크너는 '0번'이라는 독특한 번호를 붙여 본격적인 교향곡의 시작을 알리는 처녀작임을 밝혔다. 그 이후 1번부터 9번까지의 아홉 개의 교향곡들은 마치 웅장한 대성당과 같은 모습으로음악사에 우뚝 서게 된다. 최근에 국내에서 브루크너의 제9번 교향곡이 연주된 적이 있기는 하지만, 대개는 4번과 7번 교향곡이 가끔 연주될 뿐, 브루크너의 교향곡을 직접 듣기가 쉽지 않다. 아마도거대한 교회 오르간의 음향을 연상시키는 장엄함, 유난히 긴 악절과 거대한 관현악 편성, 반음계적인 화성 등의 브루크너교향곡의 특징들은 연주자에게나 청중에게나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일단 브루크너 음악의 깊은 맛을 느끼게 되면 그 음악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위대한 정신적 메시지에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브루크너교향곡의 세계에 첫 발을 내딛기 위해 가장 추천할 만한 곡은 자주 연주되고 있는 제4번과 제7번인데, 특히 그 중에서 4번을 '낭만적'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왜 브루크너는 왜 이 교향곡을 낭만적이라고 불렀을까?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이 교향곡은 바그너의 [로엔그린]의 낭만성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한다. 부루크너는항상 바그너의 [로엔그린]이야말로 낭만주의의 본질을 구현한 것이라 믿고, 이 오페라로부터 기적과 신비와 순수하고 종교적인 영감을 얻곤 했다. 테오도르 헬름스의 말을 빌면 브루크너는 4번교향곡에 대해 '중세의 도시, 새벽, 도시의 탑에서 잠을 깨라고 울리는 소리, 멋진 말을 타고 들판으로 달려나가는 기사 …' 등으로 설명했는데, 이 표제는 바그너의 [로엔그린]과 [지그프리드]의 무대지시 사항들을 표절한 것이라고 한다. 브루크너가 생각하고 있는 낭만적' 이상은 바로 [로엔그린]에 표현되었던 중세 독일의 신비스러운 자연과 순수한 사랑이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브루크너의 '낭만적' 교향곡에는 잠을 깨우는 듯한 혼의 팡파르와 그에 대한 응답(1악장)이라든지, 새가 지저귀는 듯한 현악기 소리(1악장), 기사들의 사냥 장면(3악장) 등, 표제적인 성격이 보인다. 1악장과 3악장에 비해, 2악장은 특별히 표제적인 것을 드러낸다기 보다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있을 때의 감정의 흐름이나 분위기 등을 전해주며, 브루크너의 느린 악장이 지닌 명상적인 깊이를 느끼게 해준다. 4악장은 격렬한 폭풍우의 동기와 번민의 동기 등, 몇 가지 주요 선율이 표제적인 연관성을 갖고 이 악장의 통일성을 확립하고 있다. 마치 바그너의 악극을 연상시키듯, 각 동기들은 단독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대위법적으로 결합되거나 변형되기도 하면서 음악적 긴장감을 쌓아가며 장대한 피날레를 장식하게 된다.
이렇게 브루크너의 '낭만적' 교향곡은 특히 표제적인 면에서 바그너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브루크너 자신이 이 곡의 어떤 선율에 표제적인 성격을 부여했다고 해서 이 음악을 반드시 그런 식으로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1악장 처음에 혼이 연주하는음악을 잠을 깨우는 소리로 듣고, 현악기의 연주를 새가 지저귀는 소리로 듣는 것은 분명 음악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음악에 대한 창조적 감상의 폭을 제한할 수도 있다. 실제 음악을 들을 때는 각자 나름대로의 방식 대로 음악을 받아들이기를 권하고 싶다. 특정한 선율에 자신만의 상상을 곁들일 수도 있고, 순수하게 소리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게임에 집중해도 좋고, 오케스트라의 각 악기들이 뿜어내는 색채의 변화를 따라갈 수도 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음악이 주는 즐거움을 얻을 때만이 진정한 음악 감상의 즐거움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같은 음악을 들으면서도 어떤 사람은 중세의 기사를 상상하고 어떤 사람은 풍경화를 떠올린다. 이것이 음악이 지닌 매력이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