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에서 우리말의 '양반'에 해당하는 말로 여러 종류의 말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따런(大人)이 그 하나인데, 대인은 소인(小人)에 대한 높임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도리를 하고 못함에 따라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눌 때 흔히 군자(君子)와 소인배(小人輩)로 구분하였습니다. 오늘은 군자와 소인배에 대하여 논해보려고 합니다.
1. 소인배란 무엇인가.
먼저 소인배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흔히 사회에서 크게 두 가지 계층의 차이에서 소양이 부족한 사람들은 소인배의 행동을 하기 때문에 곧잘 자신의 행위의 공공성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채 파괴행위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전통 고전공부로 말하면 군자지도(君子之道)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소인배들의 공통점은 공(公)에 대한 인식이 전혀 체화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군자는 소인배들이 방해를 할 때 가장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길가다가 깡패를 만난 선비가 할 행동에는 제한이 있습니다. 상대를 죽이지도 않으면서도 피해가야 합니다. 그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상대는 자신을 죽이려고 하지만 자신은 상대를 '칼등'으로 쳐야 하는 문제입니다.
군자는 그 자신의 도를 지키면서 소인배도 인격이니 그 인격을 살려주어야 하면서도 그 행위를 단죄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공자도 가장 어려워했던 일이 '소인배와 여자를 다루는 일'이라고 하면서 '가까이 하면 기어오르려고 하고 멀리하면 소외되었다고 반발한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동양의 주옥같은 고전들은 군자는 소인배들이 방해를 해도 흐트러지지 않고 자신의 일을 꿋꿋이 지켜나간다고 했습니다.《순자》의〈천륜(天倫)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天不爲人之惡寒也轍冬
地不爲人之惡遼遠也轍廣
君子不爲小人匈匈也輟行
하늘은 사람이 추위를 싫어한다고 해서 겨울을 없애지 않고,
땅은 사람이 거리 먼 것을 싫어한다고 해서 땅의 넓음을
거두어들이지 않으며, 군자는 소인배들이 잔소리로 훼방을
놓는다고 해서 바른 일 행하기를 그만두지 않는다.
군자는 어디에서나 비록 자신에게 이익이 없고 오히려 손해가 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그 일이 옳은 일이며 또 다수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자신의 손해를 아랑곳하지 않고 그 일을 행합니다.
그러나, 소인배는 그 일이 옳은 일이며 또 다수의 이익에 보탬이 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에게 이익이 없으면 결코 하려 들지 않습니다. 소인배는 다수의 손해를 보더라도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악행을 서슴지 않습니다.
군자가 바른 일을 행하려고 나서다 보면 난관에 부딪치는 일은 소인배들의 자기독립성이 결여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마치 어린 아기가 계속 우는 것을 달래기 위하여 거룩한 선비가 무슨 일을 해도 소용이 없는 그런 경우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윽박지르는 소리로 울음을 그치게 하려 해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대로 되지 못한 집안에서 난 아기들은 그 울음 소리 또한 대단히 상스럽게 오래 오래 흉칙하게 울게 됩니다.
자고로 훌륭한 가문에서 난 아기들은 언제나 총명하며 밝은 얼굴에 울음 자체가 그렇게 상스럽게 보이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어릴 때 잘못 다스려진 아기들은 커서도 문제를 가지게 됩니다. 이것을 옛 어른들은 '세살 버릇 여든까지'란 말로 만들었습니다.
소인배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일을 반대하거나 심지어는 공적인 일을 개인의 이익을 위해 부당한 방법을 동원하여 엉뚱한 방향으로 변경시키려 들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군자는 이러한 소인들의 농간을 용기와 지혜를 발휘하여 슬기롭게 헤쳐 나갑니다.
결코 소인들의 농간 앞에서 뜻을 굽히지 않는 이러한 군자가 많은 사회는 바른 사회가 되어 갈 수 있습니다. 백성들이 순박한 마음으로 정을 나누며 살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한편 《순자(荀子)》〈권학편(權學篇)〉에는 소인배는 다언(多言)이라고 훈계하고 있습니다. 소인배는 했던 말을 또 하고 했던 말을 자꾸 반복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생각을 하지 않고 금방 들은 말을 바로 입으로 뱉어내는 것을 반복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금방 본 일을 생각하지도 않고 바로 댓꾸하는 것은 '口耳四寸' 즉 '귀와 입 사이는 불과 네 치의 짧은 거리'라는 것으로 비유했습니다. "소인배의 학문은 귀로 들어가 곧바로 입으로 흘러나온다"는 '口耳之學' 이라는 말은 그래서 생긴 말입니다. 목이 짧은 사람은 혈기가 있다는 말은 머리통과 심장이 너무 가깝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이 그대로 받쳐 올라오는 감정으로 변하기 때문이라는 것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짧은 口耳四寸 거리를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한다면 일곱 자 자신의 '七尺' 몸을 훌륭하게 닦을 수는 없는 것임을 선현들은 가르친 것입니다.
군자의 학문은 자기 자신을 아름답게 하지만 소인배의 학문은 남을 못쓰게 방해하려합니다. 그래서 소인배는 남을 헐뜯기 위해서라면 묻지 않은 비난의 말도 입밖에 냅니다. 이것을 '잔소리'라고 합니다. 잔소리와 비난의 수다를 떠는 것은 소인배들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그래서 옛부터 하나를 논하면서 다른 것들을 말하는 것을 '수다[饒舌]'라고 합니다.
수다나 잔소리는 작은 새들의 흉내로 되어 있습니다. <莊子>에 보면 '하루살이 버섯은 그늘을 모르고, 매미는 가을을 알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참새나 제비는 전형적인 소인배의 새로 비유되기도 했습니다.
기러기나 고니는 그 큰 몸집에다 높은 창공을 훨훨 날아다닙니다. 그래서 이 두 새는 예부터 '君子'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런 반면 제비나 참새는 소인배를 비유하였습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연작홍곡(燕雀鴻鵠)이란 말입니다. 이말의 시작은 진(秦)나라 진승(陳勝)이란 사람에게서 시작된 말입니다.
진승은 진나라 말기의 한 부잣집의 일개 머슴이었습니다. 하루는 밭을 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탄식을 하면서, "장차 큰 인물이 되면 결코 오늘을 잊지 않으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주위의 머슴들이 일제히 비웃고 나섰습니다. "머슴인 주제에 큰 인물이 된다니?" 진승이 대답하여 말했습니다. "제비나 참새(燕雀)가 어찌 기러기나 고니(鴻鵠)의 웅대한 뜻을 알랴!"
실제로 세월이 흐른 후에 진승은 오광(吳廣)과 함께 혁명대열에 가담하면서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王侯將相이 따로 씨가 있을소냐?" 이 말은 고려시대의 만적의 난에서 만적이 했다는 말의 오리지날입니다. 진승이 성공하자 이 때부터 그가 말했던 연작(燕雀)은 '소인배', 홍곡(鴻鵠)은 '군자'라는 뜻으로 통하게 되었습니다.
연작홍곡에서 '홍곡'이라는 발음은 홍혹(鴻鵠)이 옳다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곡(鵠)이 '과녁'을 뜻하는 경우(正鵠, 鵠的 등)가 아니면 '혹'으로 발음하는 것이 옳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에는 너무나 '홍곡연작'은 우리말에서 그대로 깊이 오래 사용되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바이블에서나 동양 고전에서 잘못 전해진 경우들도 그대로 통용되는 경우들의 말들이 상당수 있습니다.
문제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뜻에 있습니다. 소인배 가운데 있던 진승이 다른 소인배들과는 달리 자신 스스로는 보다 큰 뜻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으로 소인배들도 군자가 될 수 있는 길이 있다는데 있습니다. 많은 소인배들이 군자의 도를 터득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길을 모르고 자신의 아집에 가려서 길을 찾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행위를 목적을 위한 수단의 여부를 가리지 않는 악한 수단을 합리화하기 때문입니다.
2. 군자(君子)의 인의예지(仁義禮智)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우리 모두가 잘 아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순서가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의로움보다 인(仁)이 먼저이고 智가 맨 나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의 말 속에는 언제나 남의 인격을 존중하는데서 시작합니다.
`지자는 요수요 인자는 요산'이라는 논어의 의미는 늙어갈수록 사람들이 산을 좋아하는 것을 볼 때 인(仁)이 지적인 면을 넘어서 있다는 것을 의미함으로서 하나의 중요한 군자의 덕으로서 평가되어져 온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런 면에서 [중용 中庸]에 나오는 군자(君子)부분을 옮겨 봅니다.
그러므로 군자(큰사람)는 자기 몸을 닦지 않을 수 없나니 자기 몸을
닦으려고 하면 자기 부모를 섬기지 않을 수 없고 자기부모를 섬기려고
하면 남을 알지 않을 수 없고 남을 알려고 하면 하늘(세계와 우주)을
알지 않을 수 없다. [中庸]
의견이 다른 상대라도 그를 알지 않으면 '하늘'(우주)를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호연지기(浩然之氣)란 것도 다시 한번 보아 둘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사람에게서나 가질 수 있는 글자 그대로 氣에 대한 차원높은 개념을 부여한 어휘가 호연지기이기에 대장부나 선비나 군자가 가져야 할 몸 마음의 힘으로서의 기(氣)로서 파악하여야 하는 것인데 호연지기 해석의 프로토타입이라고 볼 수 있는 [맹자]의 <浩然之氣>를 옮김으로서 그 의미를 되새겨 볼까 합니다.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말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그것은 氣로서 지극히
크고 지극히 강건하여 바른 삶의 자세를 길러 해를 없이 한다면 곧
그 氣가 하늘과 땅 사이에 충만하게 된다. 또 그것의 氣됨이 도덕적
행위와 자연의 道에 합치한다. [孟子] <孔孫丑>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호연지기는 '해를 없이 한다'는 것입니다. 남을 해하는 것을 없이하면 그것이 곧 호연지기에 통하는 보약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논어에 나오는 다음 귀절을 또 한번 다시 보아둘까요. 자공(子貢)이 말하기를 "군자도 역시 미워하는 일이 있습니까?" 그러자 공자께서 말했습니다.
"미워하는 일이 있다. 남의 악을 말하는 자를 미워한다.
하류에 있어 위를 비방하는 자를 미워한다. 용감하면서도
예의가 없는 자를 미워한다. 과감하면서도 가로막는 자를 미워한다.
그리고 나는 뒤에 자신을 가리고 있으면서 스스로 직선적이라고
생각하는 자를 미워한다." <논어> [陽貨篇]
군자는 언제나 자신의 말을 지킵니다. "군자는 말로써 사람을 들먹이지 않고 사람으로써 그 말을 폐하지 않는다."라는 경귀는 그래서 중요한 군자의 언행의 지침이 됩니다.
군자는 정의를 본질로 삼고 예로써 행동하며 경건히 표현하며
신의에 의해 완성한다. 이리하여 참된 군자인 것이다.
<논어> [衛靈公篇]
그러나 소인배는 용기와 고집으로 자신을 관철하려 합니다. 그 뜻을 세우기 위해서는 남을 해치는 것은 물론 죄없는 평범한 사람들도 해치거나 인질로 삼으려 합니다.
군자는 義로써 언행의 기본으로 삼는다. 의가 없이 용기만 있으면
난(亂)을 일으키고 소인배는 義는 없고 용기만 있으면 자신을 숨겨
도둑질을 한다. <논어> [陽貨篇]
그러나 어디서나 군자의 행동은 자신의 세운 뜻을 꿋꿋이 지켜나갑니다. 이것은 화적들의 세계에서도 그 군자의 목숨을 뺏을 지언정 그 뜻을 굽히게 할 수는 없습니다.
일상생활에서는 공손하고 공경하며 일할때는 경건히 힘을 다하며
남과 사귈 때는 충실하라. 화적이 우글거리는 땅에 갔을지라도
이것을 버려서는 안될지니라
<논어> [子路篇]
군자는 언제나 보다 지성적인 면을 유지하면서 공익을 위하여 자신을 인내하는 편에 속합니다. 그러나 소인배는 자신의 주장만을 위하여 남을 헐뜯거나 그래도 소용이 없다면 또 더 다른 사람들까지 해치려고 합니다.
군자는 남의 아름다운 일을 도모해 주고 남의 그릇된
악을 막고자 힘쓴다. 소인배는 이것과 반대로 행한다.
<논어> [諺淵篇]
기독교에서는 '사랑이 없으면 꽹과리'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불교에서는 무지의 결과에서 소인배가 되는 것으로 보았으며 그것을 무명(無明)이라고 했습니다. 동양 고전에서 말하는 군자와 소인배의 비유는 인생을 배우려는 자세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태도를 가르친 것입니다.
군자는 절교를 했다 해도 상대를 헐뜯지는 않는다
사마천 <史記>
군자의 도와 소인배의 도의 차이는 그 활동의 공익성의 차이에 있습니다. 군자의 도는 화이부동의 길을 가지만 소인배는 자신과 같지 않으면 저주하려 합니다. 방법 자체가 소인배는 군자와의 차이를 가집니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소인배 행위의 가장 흔한 모습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군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서로에게 같은 공동체의 의미를 가지고 방법면에서도 언제나 군자의 도를 지킬 때만이 가능합니다. 그렇지 못할 때 공자의 테크닉은 군자와 소인배의 차별을 강조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성리학의 대가인 퇴계 이황의 사유체계에서도 소인배는 군자가 될 수 없는 회의적인 표현이 나옵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누구나 배울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소인배도 군자의 대열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공공에 대한 근본적인 예의를 제대로 확보하고 공중의 인격을 인정할 줄 알 때만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