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散文] 우리 동네 자화상 - 청송국밥집 조양의 결혼이야기/ 미학 서영림

2014. 4. 9. 19:23좋은 말 글

 

 

청송국밥집 조양의 결혼이야기

 

 

 

조양이 시집을 간단다. 정확하게 말하면 재혼을 한다는 말이다.

더욱 정확하게 말하면 ‘참으로’(실제적으로나 법적으로) 결혼한다는 말이다.

 

마누라한테 맞아죽을 각오로 용감무쌍하게 현금서비스로 거금 50만원을 꺼냈다.

근엄한 모습의 신사임당 영정이 새겨진 까랑까랑한 종이 10장!

빼낼 때는 용감한 젊은 투사였지만 막상 손에 쥐니 나약한 필부가 된다.

손이 벌벌 떨린다. 그 고귀한 전리품을 카드와 함께 정성스럽게 봉투에 넣는다.

카드에는 간단하게 이렇게 썼다. 뭐 그리 길게 쓸 필요도 없지 않는가.

“조양, 결혼을 축하합니다. 행복해야 해요!”

추적추적 내리는 봄비소리 들으며 나의 성심과 기원을 봉투에 넣었다.

“조양, 잘 살아야 해!” 속으로 되뇌며... 청송 과부댁에게 건넨다.


60대 중반의 이 과부댁은 말하자면 우리 동네 청송국밥집의 CEO다.

쥐뿔도 가진 것 없이 40 후반에 과부되어 식당하면서 두 남매 대학까지 보냈으니,

성공한 CEO라고 한 들 틀린 말이 아니다.

딸은 교육대학을 나와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어 좋은 데 시집가서 잘 산단다.

그 아래의 아들은 괜찮은 대학을 나와 괜찮은 회사에 다니며 장가갈 준비 괜찮게 한다.

지금은 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되련만 아들 장가갈 밑천은 벌어야 한단다.

말이 그렇다 뿐이지 내 짐작으로는 아들 장가보내도 계속할 품새다.

이 청송 과부댁은 가끔 들리는 나를 단골은 아니지만 늘 단골대우(즉각적인 리필)를 해준다.

그런데 이 양반, 초면부터 여태까지 줄기차게 나를 ‘교수님’이라 부른다.

“사장님, 저 교수 아니에요. 그냥 선생이라 하세요.” 몇 번을 얘기했지만 실패했다. 포기다.


“제가 직접 주면 안 받을 것 같아서요. 가지고 계시다가 결혼식 때 좀 주시겠어요?”란

말과 함께,  정중히 내미는 봉투를 받아든 청송 과부댁의 주름살 있는 눈에 이슬이 맺힌다.


청송국밥집은 말이 국밥집이지 국밥 종류는 두어 가지밖에 안 된다.

벽에 붙여진 메뉴판에는 거의 술과 안주 종류로 꽉 차있다(아직 다 못 읽어봤다). 

이 집의 주특기는 돼지고기 수육이다. 이걸 안주로 소주 한잔하면 정말 내 세상이다.

아무튼 청송국밥집은 돼지고기를 주류(主流)로 하는 식당 겸 술집이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낮에는 식당이고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술집이다.

포장마차가 없는 요즘, 우리 동네에 이런 집이 있다는 것은 내겐 행운이다.  


이제, 우리의 주인공 조양에 대해 말하련다. 

 

조양은 청송국밥집의 주방보조 겸 서빙아줌마이기도 하고 음식배달아줌마다.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동네 단골들(주로 5~60대)을 위한 기쁨조 주역도 마다 않는다.

짤막한 키에, 얼굴은 둥글넓적, 주근깨가 군데군데 덮여있어 예쁜 얼굴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40대 초중반의 약간 앳된 아낙의 모습이 때로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잔파노(*)의 주먹에 찢긴 입술 언저리 흉터는 차라리 매력적이다.

그 흉터가 좀 못난 얼굴을 커버하기도 하고(대부분 그곳에 시선이 먼저 간다),

다행스럽게도 그렇게 흉하게 보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밤만 되면 우리 동네 단골 늙다리들(60대 이상) 모두의 연인이 되기에 충분하다.

이 단골 늙다리들 조양 엉덩이 한번 이상 쓰다듬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조양과 하룻밤 잠자리를 같이 했다는 얘기는 아직 한 번도 없다.


가끔씩 들려준 청송 과부댁 얘기와 조양 자신이 한 얘기를 재구성하자면 이렇다. 

경상도 북쪽 어느 시골, 찢어지게 가난한 집 4남매 맏딸로 태어난 조양은,

한 입 들려고 20여 년 전 19살의 꽃다운 나이에 시장에 팔려가는 집토끼처럼

시내에 있는 어느 집에 시집을 갔단다. 말이 시집이지 그냥 데려갔단다.

바퀴벌레 같은 신세였지만 먹을 것은 있었으니 그나마 행복한 아다다(**)였다.

시어머니와 시누이로부터의 모진 구박에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었고,

서방은 서방대로 심심하면 발길질이고 주먹질이니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그런데 1년이 좀 지났을 때 사건이 터졌다. 임신을 했는데 유산을 했다.

사실인즉 서방의 발길질이 원인이었지만 그 집 식구들은 오직 조양 탓이었다.

급기야 그 일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쫓겨나다시피 그 집을 나오게 됐단다.

다시 시골집으로 갈 수는 없었고, 뭣 배운 게 있어야 반반한 직장에 취직이라도 할 텐데,

그러나 식당일은 잡을 수 있었다. 식당을 전전하던 중 어쩌다가 고향사람을 만나

그 사람(청송 과부댁과는 먼 친척)의 소개로 이곳 청송국밥집으로 오게 되었다.

이곳에서 먹고 자는데 별도로 돈이 들지 않으니 조양에겐 안성맞춤이다.

청송 과부댁은 봉급도 남만큼 주면서 딸처럼 대해 준다. 둘은 참으로 천생연분이다.


조양인들, 이런 일 하지 않고 좋은 남자 만나 집안일만 하면서 재미있게 살고 싶지 않았겠나.

때로는 몸도 아팠을 것이고, 외로움과 그리움에 마냥 울고 싶을 때도 많았으리라.

간혹 식당 옆 건물(1층에 공동사용 화장실이 있다) 계단부근에서 혼자 있는 조양을 보았다.

지나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뭘 해?”라고 한마디 하노라면, "그냥요"하면서 웃기만 한다.

나는 안다. 그녀가 홀로 왜 그곳에 있는지를! 그날은 나도 우울모드로 빠져든다.

성격은 대쪽이지만 가슴이 따뜻한 내가 그 모습을 보고 내 마음이 어찌 편안하겠는가.


그녀가 결혼한다는 소식에 정말 기뻤다. 나는 늘 그걸 염원하지 않았던가.

조양은 나를 남달리 늘 정중히 대해주었다. 교수님, 교수님하면서 모르는 걸 자주 묻기도 한다.

나 역시 조양을 고향 친구의 여동생처럼 다정하게 대해 주었다. 그녀도 나를 오빠처럼 대한다.

머지않은 날에 결혼 날짜가 잡혔을 때, 드디어 나는 용감한 투사가 되었던 것이다.

내겐 거금이지만, 사실 그게 뭐 그리 큰 도움이야 되겠냐마는 내 염원이 담긴 최대한의 성의다.

앞으로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한다는 내 간절한 기원의 표시이리라. 


연휴 전야(금요일 저녁)라서 그런지 오늘따라 청송국밥집은 무지 분빈다.

우리 동네 중장년뿐만 아니라 노인도 총동원된 듯하다. 낯선 얼굴도 더러 보인다.

오늘은 조양이 보이지 않는다. 결혼준비 때문에 신랑 될 사람과 어디엔가 갔단다.

신랑 될 사람은 조양보다는 2~3살 많은 40 중후반으로 어느 공장의 생산직 공원이란다.

그의 아내는, 몇 년 전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남매를 두고 암으로 세상을 떠났단다.

청송 과부댁 친구의 친구 소개로 이 둘의 결혼이 바야흐로 이루어지게 되었단다.


오늘은 사장님 아들이 일을 도와주고 있다. 이 친구도 조양 못잖게 일을 잘한다.

퇴근 후 가끔씩 와서는 손을 보태준 실력이다. 그런데 이 친구 알바비를 꼭 챙긴다.

제 엄마도 넉넉하게 준다. 이 알바비만큼은 일요일마다 성당 청년회에서 함께하는

봉사활동 비용 등으로 거의 다 쓰고 있다는 걸 제 엄마도 알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단골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조양 결혼이야기가 나온다. 기회도 좋다.

처음엔 대충 끼리끼리 술자리가 이루어지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끼리끼리의 경계는 무너진다.

그동안 조양에 대한 재미있었던 얘기와 함께 축하의 얘기다. 역시 아쉬움도 토로한다.

갑자기 막내 격인 박 과장이 벌떡 일어선다. 40 중반의 약간 다혈질의 직장인이다.

“여러 형님들, 얘기만 할 게 아니라 우리 부조합시다!” 이어서 “할매! 바구니 한개 주소”

숨도 쉬지 않고 말을 이어간다. “5천원도 좋고 만원도 안 좋겠습니까?” 기준을 정한다.

“저~ 김 사장 형님, 최 사장 형님.... 주머니사정 안 좋으면 제가 빌려드릴게요.” 센스 짱!

(여기서는 특별한 사회적 지위가 없으면 다 사장이다. 말하자면 '백수'면 사장이다)

김 사장이나 최 사장은 60 초중반으로 이들 중에서 씀씀이가 좀 인색한 편이다.

특별히 일하는 게 없으니 실제 형편도 좋지 않은 것 같다. 미리 동참을 촉구한다. 

드디어 바구니가 돌려진다.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주로 2만원이다. 만원도 더러 있다.

계속 일어서 있던 박 과장이 돈을 착착 센 후 총금액을 발표한다. “18만원입니다.”

“제가 2만원 더 보태 20만원 만들겠습니다.” 단호하게 말하자, 이때 최 사장이,

“박 과장! 아서라. 내 만원했는데... 자 여기 만원 더할게”하면서 슬그머니 돈을 꺼낸다.

또 다른 한명도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어 박 과장에게 건넨다.

“아~ 감사합니다. 그럼 20만원입니다!” 여기저기서 박수가 나온다. 

“할매 봉투 있어요!?” 안면에 희색이 가득한 박 과장의 목소리가 아주 힘차 보인다.


참으로 멋진 동네 양반들이다. 그대들에게 축복이...

오늘은 기분 좋은 날이다. 술 한 잔 더해야 겠다.

살랑살랑 불고 있는 봄바람도 너무 감미롭다.

조양, 부디 화사하게 핀 저 벚꽃 속의 한 마리의 새처럼 행복하소서!!! 

 

 

글 / 서영림(중년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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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잔파노; 1954년 제작, 이태리 영화 ‘길(La Strada)' 참조

** 아다다; 1935년 발표한 계용묵의 소설 ‘백치 아다다’ 참조

               (1956년 동명의 제목으로 영화로도 제작)

   가요 '백치 아다다'(나애심, 문주란) <http://blog.daum.net/seonomusa/1430>

           

 

                                                                                                                            

 

출처 : 서노무사실무노동법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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