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3. 6. 03:43ㆍ보고픈 서화
-문인화(文人畵)-
<왕유(王維) - 장강적설도(長江積雪圖)>
얼마 전 문인화(文人畵)에 관해 글을 써볼 요량으로 우사(尤史)생이 한테 화제(畵題) 몇 수를 적어달라고 부탁을 드렸더니, 난죽(蘭竹)에 관한 화제와 손수치신 난죽(蘭竹) 대련(對聯) 한 폭도 덤으로 가져오셨다. 청(淸)나라 정판교(鄭 板橋)는 사군자(四君子)를 팔아서 생활하는 가난한 선비였다. “해(楷), 예(隸), 행서(行書)를 잘 쓰며 대나무와 난초 그림이 유명하다.”는 말씀과 묵죽(墨竹)에 관한 화제도 해설을 곁들어 주셨다.
묵죽제(墨竹題)
一節復一節 千枝攢萬葉 한마디 한마디마다 많은 가지와 많은 잎이 모여 있네.
我自不開花 免撩蜂與蝶 대나무 자신은 꽃을 피우지 않지만 벌 나비들의 시 달림을
받지 않아 좋구나.(청(淸)나라, 정 판교)
묵란제(墨蘭題)
幻色雖非實 眞香亦竟空 난초 색깔이 실제는 아니지만 진실한 향이 공중에 없을 수가 있겠는가
云何起微馥 鼻觀已先通 어렴풋이 향기가 일어나는 것 같이 벌써 코에 먼저 통 하는 것 같구나.
(石齋, 徐丙五)
수많은 그림이 있건만 이제 마음에 닿는 그림은 문인화다. 문인화는 남종화(南宗畵) 또는 남화(南畵)고도 부르는 선비들의 그림이다. 학문(學問)에 지친 선비들이 심신(心身)을 달래기 위해 여기(餘技)로 그려둔 그림이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최고의 경지(境地)를 담은 것이 문인화라 할 수 있다.
문인화의 비조(鼻祖)로 치는 이가 왕유(王維)다. 왕유(699-754)는 중국 문화사의 황금기 당(唐)나라 때 활동한 유명한 예술가요 문인이다. 불교에 심취하여 자(字)는 마힐(摩詰). 시·음악·그림으로 표현되는 인문 교육의 귀감(龜鑑)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7세기의 화가(畵家)이자 문인인 동기창 (董基昌)은 그의 화론서에서 왕유를 남종화(南宗畵)의 시조로 규정했다. 남종화는 문인 취향의 그림으로서, 피상적인 묘사(描寫)보다는 개인적인 감정 표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산수화를 발달시킨 최초의 사람 중의 하나로 왕유를 거론한다.
문인화는 사군자(四君子)를 그리는 것, 매화(梅花), 난초(蘭草), 국화(菊花), 죽(竹), 어느 것 하나 개성(個性)이 뚜렷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리고 그것들이 풍겨주는 이미지가 선비를 닮아 지조(志操)와 절개(節槪)를 읽을 수 있어 좋다. ‘매화의 일생은 추우나 그 향기(香氣)를 팔지 않는다.’… ‘난(蘭)의 향기 또한 은은하여 군자(君子)의 표상(表象)’으로 선비들이 가까이 할 만 한 가치(價値)가 있는 것 들이다. 선비란 모름지기 높은 덕(德)과 학식(學識)을 가진 사람. 사군자는 빼어난 아름다움은 지니지 못했다. 하지만 높은 기상(氣像)과 그 품격(稟格)이 선비를 닮아 있다.
모든 뛰어난 예술(藝術)은 완성된 인격(人格)의 반영이라야 한다. 인간(人間)이 되기 전에 예술은 탄생 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미(美)는 곧 선(善)이어야 한다. 미는 결코 기술의 연마(硏磨)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점에 착안(着眼)한다면 어느 한 군데가 비워있는 그림이 좋고, 그림보다 화제에 치중해 보면 좀 더 나은 감상이 아니 될 런지…….
<새우는 시골 개울에서> 인적드문 시골에서 계수나무 꽃 떨어지고 밤 정적 감도니 봄산은 비어있는 듯 하구나 달이 뜨니 뭇 산새가 놀라고 봄의 한가운데서 새들이 때때로 우는구나 왕유王維(701∼761)의 시와 그림 |
봄, 오카리나 연주/한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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