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티는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을 내놓을 때마다 제목에 희한한 용어를 갖다 붙이곤 했는데, 예컨대 ‘오지브’(Ogive)는 ‘첨두형 아치’를 가리키는 건축 용어를 빌려 쓴 것이다. 그런데 ‘그노시엔’(Gnossienne)은 사티가 자기의 작품 제목으로 쓰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단어이다. 사티가 만들어낸 단어 ‘그노시엔’은 과연 어디에서 유래되었고 무슨 뜻을 담고 있는 것일까? 이 단어의 유래를 두고는 두 가지 설이 주장되고 있다. ‘그노시스’ 유래설과 ‘크노소스’ 유래설이다.
‘그노시스’(gnosis, 프랑스어로는 gnose)란 ‘지식’을 의미하는 그리스어로 종교사상적으로는 ‘영지’(靈知)라고 한다. 그노시스주의(영지주의)는 2세기에 성행했던 사상 조류로, 이것이 초기 기독교 사상에 흘러들어와 영지주의 파를 형성하자 정통파 기독교 사상가들에 의해 맹렬한 공격을 받게 되었다. 이후 영지주의는 박해를 피해 숨어들어가 오랜 세월 동안 은밀히 전승되다 19세기 말의 신비주의 흐름을 타고 유렵 각국에서 교단이 설립되면서 표면화하였다. 1891년 사티는 파리에서 설립된 ‘가톨릭 장미십자교단’의 전속 작곡가 겸 합창단 지휘자로 일하면서 그노시스주의와 연관을 맺게 된다. 바로 이 무렵 그는 <그노시엔>을 작곡했다. ‘그노시스’ 유래설은 이런 배경에서 주장된 것인데, gnose와 Gnossienne은 아닌 게 아니라 철자에서 매우 유사한 점이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한편 ‘크노소스’ 유래설이 주장된 연유는 이렇다. 크노소스(Knossos)는 크레타 섬에 있던 고대 그리스 미노아 문명의 왕궁이다. 크레타 왕 미노스는 이 왕궁 안에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는 라비린토스(미궁)를 만들고 우인(牛人) 미노타우로스를 가두어 놓았다. 그런데 19세기 말에 전설로만 여겨졌던 크레타 왕궁 터가 발견되었다. 유럽인들은 속속 전해지는 발굴 소식에 열렬한 흥미를 쏟았다. 사티도 물론 큰 관심을 가졌다. 미노타루로스가 포효를 하면 미궁 밖에서 처녀들이 춤을 추면서 노래를 크게 불러 달랬다고 하는데, 사티가 이 춤곡을 악상으로 환기시켜 곡을 만들고 거기에 ‘그노시엔’이라는 제목을 붙였다는 것이 ‘크노소스’ 유래설이다.
‘그노시스’ 유래설이든 ‘크노소스’ 유래설이든 두 주장은 ‘그노시엔’에 대한 사티의 어떤 언급도 기록도 없기 때문에 논쟁에 그치고 있을 뿐이며, 사티가 만들어낸 이 단어의 진짜 뜻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Aldo Ciccolini, pia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