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애릭 시티 / 그노시엔

2013. 11. 27. 07:26듣고싶은 곡



Erik Satie Gnossiennes

애릭 시티 / 그노시엔

Erik Satie [[1866-1925]

collect & bring write-shomron




사티는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을 내놓을 때마다 제목에 희한한 용어를 갖다 붙이곤 했는데, 예컨대 ‘오지브’(Ogive)는 ‘첨두형 아치’를 가리키는 건축 용어를 빌려 쓴 것이다. 그런데 ‘그노시엔’(Gnossienne)은 사티가 자기의 작품 제목으로 쓰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단어이다. 사티가 만들어낸 단어 ‘그노시엔’은 과연 어디에서 유래되었고 무슨 뜻을 담고 있는 것일까? 이 단어의 유래를 두고는 두 가지 설이 주장되고 있다. ‘그노시스’ 유래설과 ‘크노소스’ 유래설이다.

‘그노시스’(gnosis, 프랑스어로는 gnose)란 ‘지식’을 의미하는 그리스어로 종교사상적으로는 ‘영지’(靈知)라고 한다. 그노시스주의(영지주의)는 2세기에 성행했던 사상 조류로, 이것이 초기 기독교 사상에 흘러들어와 영지주의 파를 형성하자 정통파 기독교 사상가들에 의해 맹렬한 공격을 받게 되었다. 이후 영지주의는 박해를 피해 숨어들어가 오랜 세월 동안 은밀히 전승되다 19세기 말의 신비주의 흐름을 타고 유렵 각국에서 교단이 설립되면서 표면화하였다. 1891년 사티는 파리에서 설립된 ‘가톨릭 장미십자교단’의 전속 작곡가 겸 합창단 지휘자로 일하면서 그노시스주의와 연관을 맺게 된다. 바로 이 무렵 그는 <그노시엔>을 작곡했다. ‘그노시스’ 유래설은 이런 배경에서 주장된 것인데, gnose와 Gnossienne은 아닌 게 아니라 철자에서 매우 유사한 점이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한편 ‘크노소스’ 유래설이 주장된 연유는 이렇다. 크노소스(Knossos)는 크레타 섬에 있던 고대 그리스 미노아 문명의 왕궁이다. 크레타 왕 미노스는 이 왕궁 안에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는 라비린토스(미궁)를 만들고 우인(牛人) 미노타우로스를 가두어 놓았다. 그런데 19세기 말에 전설로만 여겨졌던 크레타 왕궁 터가 발견되었다. 유럽인들은 속속 전해지는 발굴 소식에 열렬한 흥미를 쏟았다. 사티도 물론 큰 관심을 가졌다. 미노타루로스가 포효를 하면 미궁 밖에서 처녀들이 춤을 추면서 노래를 크게 불러 달랬다고 하는데, 사티가 이 춤곡을 악상으로 환기시켜 곡을 만들고 거기에 ‘그노시엔’이라는 제목을 붙였다는 것이 ‘크노소스’ 유래설이다.

‘그노시스’ 유래설이든 ‘크노소스’ 유래설이든 두 주장은 ‘그노시엔’에 대한 사티의 어떤 언급도 기록도 없기 때문에 논쟁에 그치고 있을 뿐이며, 사티가 만들어낸 이 단어의 진짜 뜻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Aldo Ciccolini, piano

No.1 Lent



6개 '그노시엔'의 작곡 경위

여섯 곡의 <그노시엔> 중 가장 먼저 작곡된 것은 5번으로, <짐노페디>에 이어 1889년 7월 8일에 작곡되었다. 묶어서 보통 ‘세 개의 그노시엔’(Trois Gnossiennes)이라 부르는 1번, 2번, 3번은 1890년경 작곡되었으며 1893년에 처음 출판되었다. 4번은 1891년 1월 22일 작곡되었으며, 6번은 첫 번째 <그노시엔>인 5번이 나온 지 8년이 지난 1897년 1월에 작곡되었다. 그러니까 여섯 개 <그노시엔>의 작곡 순서는 5-1-2-3-4-6번인 셈이다. 이 밖에 1891년에 작곡한 <별들의 후예>(Le Fils des étoiles)라는 부수음악의 1막에 ‘그노시엔’이라고 사티 자신이 명명한 곡이 들어 있는데, 이것을 7번 <그노시엔>으로 꼽기도 한다. ‘별들의 후예’라는 제목 자체가 그노시스주의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것은 틀림없다.



여섯 개의 <그노시엔> 중에서 사티 생전에 출판된 곡은 1, 2, 3번을 묶은 ‘세 개의 그노시엔’뿐이고, 4, 5, 6번은 사티 사망 40여 년이 지난 1968년에야 출판되었다. 이 곡들에 대해 사티 자신 ‘그노시엔’이라 제목을 달지도 않았고 순번을 매기지도 않았다. 4, 5, 6번을 세트로 묶어 출판을 한 로버트 케이비란 사람이 작곡 순서대로 번호를 매긴 것도 아니었다. 사티가 분명 이 세 곡을 한 묶음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에 <그노시엔>을 연주할 때 ‘세 개의 그노시엔’으로 그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노시엔>은 사티 작품이 가지고 있는 강박관념 또는 자기도취적인 측면을 잘 표현한 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시간을 초월한 음악의 좋은 예이다. 도입부도 없고 종결부도 없는 음악이며, 때도 없이 시작되고 결코 끝나지 않는 음악이기도 하다. 사티 작품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노시엔>의 악보에도 마딧줄이 없다. 마딧줄이 없는 것은 그레고리오 성가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사티의 <그노시엔>은 또한 침묵과 통하는 음악이다. 그 침묵은 단순함을 향한 열망이기도 하다. 짧은 악절을 쉼 없이 반복하다 어느새 사라지는 단순하고도 흐릿한 존재감으로 마침표를 찍는 순간까지... 따라서 <그노시엔>은 단순한 패턴을 반복적으로 연주하는 현대음악의 중요한 흐름인 시간을 초월한 음악이기도 하며, ‘침묵’과 ‘영원’을 두루 함의하고 있는 미니멀 음악의 선구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노시엔>의 공통점은 저음부의 완전화음 위를 선법적인 색채를 띤 선율 또는 그 단편이 진행되어 가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저음의 첫째 박자에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화음에 의지하면서 일종의 흔들림을 계속 유지하고 연주해야만 <그노시엔>의 묘미를 제대로 살려낼 수 있다.

에릭 사티는 프랑스 음악사, 아니 서양 음악사 전체를 통틀어서도 가장 독특한 음악가의 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고풍적인 선율, 매우 절제된 작법, 해결되지 않는 화음과 엉뚱해 보이는 단순성, 그리고 초현실주의와 다다이즘과의 연계로 인해 아주 특이한 작곡가로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19세기 후반 프랑스 음악사의 어떤 흐름과도 연결되지 않는 그의 특별한 음악세계는 그를 근대 프랑스 음악의 아웃사이더처럼 여기게 만든다. 하지만 그는 프랑스 현대 음악사의 중요한 시점에서 하나의 단초를 제공하였다. 그는 오랫동안 은둔생활을 했고 당대 프랑스 음악계에 기여한 업적도 없다. 사티는 과연 음악계의 방관자 또는 이단아였던가? 아니다. 그의 단순한 악곡들은 후대의 음악가들에게 숱한 사색의 공간을 열어주었다. 에릭 사티는 음악계에 중요한 화두를 던졌던 현대음악의 선구자였다.





출처 : 클래시칼 아트 뮤직
글쓴이 : 쇼므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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