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0. 7. 12:51ㆍ듣고싶은 곡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이스탄불 다리'>
[프롤로그] 역사학자 토인비(Arnold J.Toynbee)가 말했다시피 '인류 문명이 살아 있는 거대한 옥외박물관’인 이스탄불(Istanbul)이 있는 나라, 중동의 형제나라 터키(Turkey)! 북쪽으로는 흑해를 끼고 있으며(흑해 어귀에서 에게 해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에 터키의 최대도시, 구릉성 3각형 반도의 해항 이스탄불이 있다), 서쪽으로는 에게 해 건너편에 신화의 나라, 헬레니즘 문화의 발상지 그리스와 가까이 마주하고 있고, 남쪽으로는 지중해 저 너머 이집트가 자랑하는 지중해의 진주, 알렉산드리아(Alexandria)가 있다. 아나톨리아 반도 터키, 동양(아시아)과 서양(유럽)이 교차(‘비단길’ 서단에 위치)하는 이 나라는 고대 오리엔트 문명에서부터 그리스·로마 문화와 기독교·이슬람 문화까지 이 한곳에서 어우러져 있는 곳으로 죽기 전 정말 한번 가보고 싶은 나라이다. 이 페이지를 통해 그들의 음악을 감상하고 아울러 우리나라와의 관계(6.25한국전쟁과 2002한일월드컵) 그리고 이스탄불과 관련한 그들의 문화사적 몇 면을 보기로 한다.
[터키의 음악] 유목민의 나라 터키의 음악은 한 많은 회한의 슬픈 이야기들이 많다. 일생을 떠돌며 생의 고락 속에 민족의 핍박에서 오는 설움은 형제와 부모를 잃은 설움보다 더 컸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민속적인 음악 ‘파실'이라는 음악(일종의 ’파두‘와 비슷하다)이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대중음악으로 오늘날의 터키의 음악이라 할 수 있다. 파실은 현대적인 진화를 거듭하여 제3세계음악으로 전 세계인들이 즐겨 듣는 음악으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그 음악 중앙에 터키의 자존심인 ’깐단 에르쎄틴‘이 우뚝서있다. 1990년대 이후 레벤트 윅셀(Levent Y ksel), 깐단 에르쎄틴(Candan Ercetin), 세브넴 페라(Sebnem Ferah), 세르타브 에레네(Sertab Erener) 등 가수들은 터키에서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다. 이 페이지에서는 이들 중 가장 사랑을 받고 있는 파실 팝의 디바 '깐단 에르쎄틴'의 노래만 소개한다.터키의 음악은 그 자체가 아름답고 고혹적이며 아름다운 서정시와 같다. 또한 노랫말에서 보는 바와 같이 철학적이다. <웹 사이트 참고>
지금 흐르는 노래는 '깐단 에르쎄틴'의 '바다(Sensizlik)'란 노래다. 이어서 그녀의 다른 노래 5곡을 이어서 들을 수 있다. 또한 각 곡은 아래 '바다' 가사 하단에 개별적으로 들을 수 있도록 했으며 아울러 가수 소개도 간략하게 붙였다.
<전곡 이어듣기> 1. Sensizlik, 2. Olmaz, 3. Ben Boyleyim, 4. Elbette, 5. Soz Vermistin, 6. Unut Sevme
Sensizlik(바다) / Candan Ercetin(깐단 에르쎄틴)
너는 기울 수 없는 비탈진 가슴의 그대 외로움이 스며들 때면
서늘한 고독의 날을 세우고 나그네 길로 떠나라
영원으로부터 태어나 태초의 외로움과 맞닥뜨리고
천 갈림길 만 갈래로 유영하는 바다를 보라 당장이라도 숨이 끊길 듯 소용돌이치는
외로움의 불이 아니곤 잠재울 수 없는 감정 같으리니
아 그대 외로움이 스며들 때면 외로운 넋
붉게 접어 넓은 바다 깊은 수심으로 은밀히 수장하라
2. Olmaz (말도 안돼)
3. Ben Boyleyim (Adoro: 사랑해) 아르만도 만사네로 (Armando Manzanero(1935 ~, 멕시코)가 1967년에 발표한 라틴음악'Adoro'(국내에선 패티김이 번안해불렀던 곡으로 유명)를 편곡(?)한 곡
4. Elbette (반드시)
5. Soz Vermistin
6. Unut Sevme (잘 잊어버리며 사랑해)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터키의 여가수 Candan Ercetin(깐단 에르쎄틴)은 1963년 알바니아계 양친으로부터 터키 Kirklareli에서 태어났다. 이스탄불 대학에서 고고학을 공부했다. 1986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Eurovision Song Contest)에 터키의 대표였던 ‘Klips ve Onlar’ 그룹의 멤버였으며 프랑스에서 출간된 한 개를 포함 몇 개의 뮤직앨범을 가지고 있으며 많은 뮤지컬에도 참여하여 주목을 받았다. 그녀의 붉은 머리칼은 그녀의 상징처럼 널리 알려져 있다. 깐단 에르쎄틴은 전 세계적으로 ‘파실 팝’의 디바로 사랑받는 아름다운 지중해의 꽃이다. <웹 사이트를 참고>
우리와는 피를 함께한 형제나라 - 터키... 이제 우리가 도울 차례입니다!
6ㆍ25한국전쟁 시 터키는 참전 16개국(의료지원국 포함 총 21개국) 중 4번째로 많은 병력(14,936명)을 보냈으며, 전사 및 사망 741명, 실종 163명으로 사실상 904명 이상의 젊은 꽃들이 이름도 몰랐던 동방의 작은 나라에 와서 자유와 평화를 위해 싸우다 숨져갔다. 이 외에 부상이 2,068명, 포로 244명으로 피해자 수가 총 3,216명에 이른다. 이들이 어찌 우리와 피를 함께한 형제들이 아니겠는가! * 2011년 10월 23일 '터키의 강진 참사'에 즈음하여 올린 게시물 '우리의 형제나라 터키를 생각한다'<http://blog.daum.net/seonomusa/2344>을 참조.
승자도 패자도 없었던 2002 한일월드컵, 한 - 터키 4강전(3, 4위전)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터키는 우리나라는 함께 나란히 4강에 올랐다. 이어서 우리와 터키와의 3, 4위전에서 우리의 붉은 악마들은 두 팀 모두를 응원했다. 비록 우리는 터키에 졌지만 아무런 아쉬움도 없었고 오히려 터키에 박수를 보냈다. 서로 손을 맞잡고 나란히 어깨에 손을 올려 4강의 기쁨을 함께했다. 여기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 오직 ‘형제애’만 있을 뿐이었다.
비잔틴문화와 기독교문화, 이슬람문화의 어우름 - 성 소피아 성당
역사학자 토인비는 이스탄불(Istanbul<영>)을 일컬어, “인류 문명이 살아 있는 거대한 옥외박물관”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은 고대 오리엔트 문명에서부터 그리스·로마 문화와 기독교·이슬람 문화까지 이 한곳에서 어우러져 예전 모습들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게 말한 것으로 보인다. 터키의 최대 도시 이스탄불을 얘기하면 ‘성 소피아 성당’이 먼저 떠오른다. 로마법대전(정식명칭: ‘시민법대전’Corpus Iuris Civilis)을 편찬한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1세)는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성 소피아 성당이 완공되자 너무나 감동하여 "오! 솔로몬이여, 나는 그대를 이겼도다!"라고 외쳤다는 일화도 전해져 온다. '성스러운 지혜'라는 이름에 걸 맞는 '성소피아 성당'은 이스탄불을 대표하는 세계 최고의 건축물로 터키인들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또한 이스탄불은 커다란 역사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도시로서 과거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수많은 유물들이 남아 있다. 보존이 잘 된 기념물들로는 예레브스탄 궁전(지하 궁전)과 콘스탄티누스 궁전('텍푸르 사라이'라고도 함. 콘스탄티누스 황제 사후 1,000년 뒤에 건립)이 꼽힌다. 고대에 세워진 많은 그리스도교 교회의 상당수가 지금도 사용되고 있으며 더러는 모스크로 이용되기도 한다. 이들 중 가장 큰 것은 하기아 소피아(Hagia Sophia)로서 1453년 모스크로 바뀌었다가 1935년에 박물관이 되었다. 비잔틴제국(동로마제국)의 성당양식과 오스만제국의 이슬람양식이 섞여 있는 소피아 성당은 비잔틴 건축의 걸작으로 꼽히는 건축물로,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이 지어지기 전까지는 세계 최대 규모였다. 성 소피아 성당은 이스탄불이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로 불리고 있을 때인 325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그리스도교의 대성당으로 지은 것을, 532년~537년에 걸쳐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에 의해 비잔틴 양식의 대성당으로 완공되었다.
*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콘스탄티노폴리스)은 원래 그리스의 도시 비잔티온(Byzantion)이었기 때문에 동로마제국을 일명 비잔틴제국이라고도 부른다.
*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은 그리스시대에는 ‘비잔티움(Byzantium; BC 8세기말경 그리스인들이 식민지로 건설한 곳)’이라 불렀는데, 로마의 콘스탄틴 대제가 330년 수도를 이곳으로 옮긴 후 그 이름을 콘스탄티노플로 바꾸었으나, 1453년 오스만 투르크(Osman Turks)에 의해 이 제국이 망한 후 현재의 이름인 ‘이스탄불’로 바뀌었다(1923년 터키 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수도가 앙카라로 옮겨졌고, 콘스탄티노플은 1930년 이스탄불이라는 이름으로 공식 개칭되었다). 이러한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이스탄불은 비잔틴문화와 기독교문화 및 이슬람문화가 혼재된 문화를 가지고 있다.
* 그리스어로 ‘하기아’란 ‘성(聖)’이란 뜻이며, 터키어로 ‘아야’이다. 하기아 소피아를 터키어로는 ‘아야소피아(Ayasofya)’라 하며, 성 소피아 사원, 신성한 지혜의 교회(Church of the Divine Wisdom)라고도 한다.
이스탄불은 커다란 역사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도시로서 과거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수많은 유물들이 남아 있다. 보존이 잘 된 기념물들로는 예레브스탄 궁전(지하 궁전)과 콘스탄티누스 궁전('텍푸르 사라이'라고도 함. 콘스탄티누스 황제 사후 1,000년 뒤에 건립)이 꼽힌다. 고대에 세워진 많은 그리스도교 교회의 상당수가 지금도 사용되고 있으며 더러는 모스크로 이용되기도 한다. 이들 중 가장 큰 것은 하기아 소피아(Hagia Sophia)이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톱카피 궁전에는 문서·도기·갑옷·직물 등 터키의 중요한 수집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교회사로서 이스탄불(콘스탄티노플)
현재 가톨릭 공식 전례상의 원칙적인 '신앙고백'인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Niceno-Constantinopolitan Creed, 같은 신앙고백으로서 ‘사도신경’은 예외적으로 인정된다. <http://blog.daum.net/seonomusa/1574>을 참조)은, 콘스탄티노플에서 개최된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년)에서 종전의 니케아 신조(325년)를 공포한 것이다.
* 제2차 콘스탄티노플공의회 후 거의 500년이 지난 863년 로마교황이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포시우스를 파문한 사건과 또 그 후 200년이 지난 1054년 훔베르트 추기경이 콘스탄티노플의 성 소피아 대성당 제단에 던진 파문교서와 이에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체룰라리우스가 선고한 로마교황에 대한 파문사건으로 동, 서방교회의 대분열(분열의 근본적인 원인은 정치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726년 황제 레오 3세가 발표한 '우상금지론'을 계기로 교회에 대한 황제의 지배권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현실화 되었다. 이를 '비잔틴 제국의 황제교황주의'라고 한다. 이것은 결국 황제와 로마교황과의 대립을 격화시켜 11세기 중엽에는 동서교회가 완전히 분리되기에 이르렀다) 있은 후 1000년 가까이 지내오는 동안(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후 거의 1,700년이 된다)에도 서방교회(로마가톨릭)는 이 신경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약간의 표현 차이로 동, 서방교회 간에 논쟁은 있었음).
동방교회(Ecclesia Orientali: 그리스정교회)와 서방교회(‘로마 가톨릭교회’를 말하며 통상 ‘가톨릭교회’라 함은 이를 가리킨다)는 가톨릭교회와 동방교회(그리스정교회)의 차이는 교회관의 차이에 있다. 즉 가톨릭에서 교회를 불가견적 신비체인 동시에 교황을 수장으로 하는 가견적 통일체라고 하는데 대해 그리스정교회는 사랑과 은총에 의한 불가견적 통일체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로마교황을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교회의 수장이며 신앙 개조의 결정과 신앙 도덕에 관한 최고의 결정자라고 하는 교황 수위권에 반대하고 있다. 구체적인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아무튼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 로마)를 전후하여 동서교회의 일치운동이 전개되고 있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일치교령' 참조) - 이상 웹문서 및 서울대학교출판부 3인 공저 '세계문화사'를 참고 -
Compiled by < http://blog.daum.net/seonomus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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