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클래식 문학과 음악] 괴테의 문학과 리스트 음악의 만남 - 시극(詩劇)/ 파우스트(Faust), 교향시(交響詩)/ 파우스트 교향곡(Faust Symphony)

2013. 9. 26. 07:42듣고싶은 곡

 

괴테의 문학과 리스트 음악의 만남 - 파우스트(Faust)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와 리스트의 교향시 ‘파우스트 교향곡’)

 

 

들어가면서(prologue)

 

인류의 문학사를 얘기할 때 독일 민족문학과 고전주의 문학의 최고봉에 자리하는 요한 볼프강 폰 괴테(Goethe, Johann Wolfgang von 1749~1832)의 [파우스트(Faust) 1808년(1부), 1832년(2부)]를 결코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파우스트는 세계 문학사는 물론 정신사를 포함한 문화사 전반에 끼친 영향은 너무도 크다. 특히 음악에 대한 영향은 괄목할 만하다. 독일 문학사뿐만 아니라 세계 문학사에서 괴테만큼 음악사에 그토록 강하고 심오하게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 작가는 없을 것이다. 이 페이지를 통해, 괴테와 그의 문학을 대표하는 희곡(戱曲: 시극 詩劇) ‘파우스트’를 개관하고, 프란츠 폰 리스트(Liszt, Franz von 1811~1886, 헝가리)의 대표작으로서의 [파우스트 교향곡(Faust Symphony) 1854년]을 감상해보기로 한다. 이해의 편의 또는 감상의 효율을 위해 먼저 각각에 대한 개요를 제시하고 이어서 구체적인 해설은 그 뒤에 붙인다. 이 페이지의 모든 글은 기존에 올린 게시물의 글과 관련 책자와 웹문서, 웹 사이트의 글을 참고하거나 인용(별도로 명시)하였다. 특히 중요한 서술 중 극히 본인의 주관적인 서술은 ‘사견(私見)’임을 표시했다.  미학 서영림 -

 


 

[ 순서](큰 제목만 표시)

 

희곡 ‘파우스트(Faust)’의 개요

음악 ‘파우스트 교향곡(Faust Symphony)’의 개요

음악 감상(YouTube)

괴테와 괴테의 문학 그리고 시극(詩劇) ‘파우스트(Faust)’ - 종합해설

프란츠 리스트의 교향시(交響詩) ‘파우스트 교향곡(Faust Symphony)' - 종합해설

에필로그: 괴테 사후 100주년  즈음 슈바이처 연설문(비인간화 현상의 극복 방안 - 일부)

 

 Compiled by <http://blog.daum.net/seonomusa>

 

(파우스트를 유혹하는 메피스토펠레스)

 

 

희곡 ‘파우스트(Faust)’의 개요

 

60년 가까이에 걸쳐(1773년에 집필을 시작해 1831년에 완성) 완성한 희곡 ‘파우스트’는 전 인류의 역사를 포괄하는 깊이를 지닌 대작이다.16세기 독일에 실존했던 파우스트 박사의 전설에 영감을 얻어 수많은 예술작품이 탄생했지만 그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파우스트는 괴테가 일생 동안 생각하고 체험한 모든 것이 집약된 작품으로 독일정신의 총체인 동시에 인간정신의 보편적 지향을 제시(사견)하는 고전 중의 고전이다. 파우스트는 인간 파우스트 박사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팔고 시공을 초월해 선과 악의 세계를 오가며 갖가지 인생을 경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작품에서 지식과 학문에 절망한 노학자 파우스트 박사의 장구한 노정을 그리고 있으며,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에 빠져 방황하던 파우스트가 잘못을 깨닫고 구원을 받는다.(좀 더 상세한 것은 아래 별도의 종합해설 [괴테와 괴테의 문학 그리고 시극(詩劇) ‘파우스트(Faust)’]를 참조)

 

 

교향시 ‘파우스트 교향곡(Faust Symphony)’의 개요

 

괴테의 시극(詩劇) '파우스트'와 직접 관련된 대표적 음악으로는 3가지를 손꼽을 수 있다. 가장 유명한 곡으로는 리스트(Franz von Liszt, 1811~1886, 헝가리)의 <파우스트 교향곡 Faust Symphony, 1857년)을 들 수 있고, 구노(Charles Gounod, 1818 ~ 1893, 프랑스)의 오페라 <파우스트 Faust, 1859년>, 그리고 베를리오즈(Louis Hector Berlioz, 1803 ~ 1869, 프랑스)의 칸타타 <파우스트의 겁벌(劫罰) La damnation de Faust, Op.24, 1846년)이 그것이다. 리스트의 ‘파우스트 교향곡’은, 괴테의「파우스트」에 감명을 받은 리스트가 46세 때(1857년) 완성시키고 초연된 작품이다. 이 곡에는 「괴테의 3개의 성격 묘사」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즉 파우스트, 그레첸, 메피스토펠레스 등 주요 인물들의 성격이 묘사되어 있다. 여기서는 묘사적인 악장을 연결시켜 하나의 교향곡(이를 ‘교향시’라고 함)으로 만들었다. 대단히 오랜 기간이 걸렸는데, 1857년에 테너 독창과 남성 합창을 넣어 결정판으로 완성시켰다. 각 악장에는 세 사람의 이름만이 붙어 있을 뿐 아무 표제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3개의 교향시(Symphonic poem)를 연결한 것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좀 더 상세한 것은 아래 별도의 종합해설 [프란츠 리스트의 교향시(交響詩) ‘파우스트 교향곡(Faust Symphony)']을 참조)

 

 

Liszt, A Faust Symphony

 

London Philharmonic Orchestra

cond., Vladimir Jurowski

Marco Jentzsch, tenor / London Symphony Choir / London Philharmonic Choir

 

(BBC Proms. 2011)

 

 

괴테와 괴테의 문학 그리고 시극(詩劇) '파우스트(Faust)'

 

 

 

세계문학의 거목, 독일의 대문호 -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영국에는 셰익스피어(Shakespeare, William 1564~1616)가 있고 프랑스에서는 위고(Hugo, Victor Marie 1802~1885)가 있으며 러시아에는 톨스토이(Tolstoi, Lev Nikolaevich 1828~1910)와 도스토예프스키(Dostoevskii, Fyodor Mikhailovich 1821~1881)가 있다면 독일에는 괴테(1749~1832)와 실러(Schiller, Johann Christoph Friedrich von 1759~1805)가 있다(독일의 경우는 사견). 이들 모두 민족문학의 거성이자 세계문학의 거목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법에 대한 식견과 성찰이 뛰어난 법률문학의 대가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법률문학에 대해서는 기회가 되는 대로 <문학과 법 이야기>를 통해 작품별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몇 개 작품에 대해서는 이미 썼다).

 

여기에서는 괴테와 실러만 간단히 보자.[참고: 실러의 시와 베토벤의 음악(교향곡 제9번 D단조 ‘합창’)에 대한 음악 게시물 <http://blog.daum.net/seonomusa/3086>을 참조] 이들은 독일 고전주의 문학의 쌍벽으로 죽어서 무덤에서조차 함께(괴테가 10년 선배이나 실러가 46세라는 이른 나이에 먼저 사망했는데 후에 괴테가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바이마르의 한 묘지에서 실러 곁에 누웠다)할 정도로 문학은 물론 여러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 등 학문적 교류를 이루었던 각별한 동반자였다(이들 교류에 대한 상세한 것은 후술한다). 이들 모두 청년시절엔 법학도였다(실러는 후에 의학으로 바꾸었다). 괴테는 법률가, 시인, 극작가, 사상가, 철학자, 사상가, 자연과학자, 행정가, 무대감독 등 그의 경력에서 보듯이 위 거목들 중 가장 지식이 높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괴테는 실천과 행동에 의한 경험을 중시했다. 유명한 실러와 첫 대화에서, 꽃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실러의 질문에 괴테는 ‘경험’이라고 답하자 실러는 ‘이념’이라고 반박한다. 여기에서도 괴테의 실천적 이상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또한 그는 요한복음서의 구절을 번역하는 파우스트의 입을 빌어 태초에 존재했던 것은 ‘말씀’(요한복음 1장 1절 참조)이 아니라 ‘행동’이라고 한다(제1부 1,237행).

 

괴테의 문학적 여정(이하 이 항의 글은 번역가, 칼럼니스트 ‘박중서’의 글을 대부분 인용하였으나 이해의 편의를 위해 부분적으로 첨삭하거나 수정하였다)을 보자. 괴테는 1749년 8월 28일,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서 태어났다. 귀족은 아니었지만 비교적 넉넉한 중산층 집안에서 자라나며 어려서부터 문학과 예술을 가까이 접했고, 8세에 시를 짓고 13세에 첫 시집을 낼 정도로 조숙한 문학 신동이었다. 부친의 권유로 대학(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는 법학을 전공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20대 초반에 변호사로 개업했지만, 괴테의 관심은 이미 법률이 아니라 문학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이때부터 그는 여러 문인과 교제하고, 광범위한 독서에 몰두하며, 시와 희곡 등을 습작한다. 1772년에 괴테는 업무상 베츨라르에 머물 때 요한 케스트너라는 새 친구를 사귄다. 케스트너에게는 샤를로테 부프라는 약혼녀가 있었는데, 괴테는 첫눈에 반해 그녀를 짝사랑하게 된다. 고향으로 돌아온 괴테는 얼마 뒤에 한 친구가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자살했다는 비보를 전해 듣는다. 이 소재에 자신의 체험을 섞어서 쓴 그 유명한 서간체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 1774년)은 주인공 베르테르의 옷차림이 유행하고 모방 자살[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 참조]까지 일어나는 등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로써 괴테는 20대 중반의 나이로 하루아침에 유명 작가가 된다.

 

1775년, 괴테는 프랑크푸르트를 떠나 이후 제2의 고향이 된 바이마르로 향한다. 인구 6천 명의 이 작은 공국의 신임 군주 카를 아우구스트 대공은 괴테를 전적으로 신임하며 국정을 맡긴다. 성공적인 공직(재상) 수행에도 불구하고 괴테의 내면에서는 예술을 향한 갈증에서 비롯된 불안이 나날이 커지고 있었다. “나는 날개를 가지고 있지만 써먹을 수는 없다.” 지적인 애인 샤를로테 폰 슈타인이나 당대의 지식인 헤르더와의 교제도 그의 욕구불만을 해소시키진 못했다. 급기야 괴테는 바이마르 생활 10년 만에 도망치듯 혼자 여행을 떠난다. 다행히도 괴테는 ‘실러’라는 또 다른 독일 문학의 거장과 교류함으로써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셈이 되었다. “자네는 내게 또다시 청춘을 안겨주고, 나를 또다시 작가로 만들어 주었다네.” 1794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두 사람의 우정은 급기야 실러가 괴테를 따라 바이마르로 이주하기에 이르렀다. 두 사람은 [크세니엔](1795)이라는 풍자시를 공저했고, 서로의 작품을 비평하며 집필을 독려했다. 희곡 [타우리스 섬의 이피게니에](1787), [에그몬트](1788), [토르크바토 타소](1790), 그리고 독일 ‘교양소설’의 전형인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1796) 등이 이 시기를 전후해 나온 괴테의 작품들이다.

 

1805년에 실러가 46세라는 이른 나이에 사망하자 괴테는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환갑을 맞이한 1809년부터 사망 때까지 20여 년간 비교적 평온한 삶 속에서 괴테의 창작력은 절정에 달했다. 희곡 [파우스트] 제1부(1808), 소설 [친화력](1809), 자서전 [시와 진실] 제1~3부(1811~13), 기행문 [이탈리아 기행](1816), 시집 [서동시집](1816)과 [마리엔바트의 비가](1823),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1829), [시와 진실] 제4부(1830) 등이 모두 이 시기의 작품이다. 1825년에 괴테는 [파우스트] 제2부의 집필을 시작했고, 그로부터 6년 뒤인 1831년에 드디어 탈고했다. 하지만 그는 간행을 서두르지 않았고, 원고를 봉인한 뒤에 자신의 사후에 발표하도록 주위에 지시했다. 평생의 역작을 완성한 이상, 이제는 자신의 최후가 가까웠음을 실감했기 때문일까? 이듬해인 1832년 3월 22일, 괴테는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바이마르의 한 묘지에서 평생의 지기였던 실러 곁에 누웠다.

 

 

구상에서 완성까지 60년이 걸린 대작 ‘파우스트’

 

괴테의 대표작인 희곡 [파우스트]는 구상에서 완성에 이르기까지 무려 60년이 걸린 대작이다. 대학 졸업 직후부터 쓰기 시작했지만 결국 미완성 상태로 간행된 [파우스트 단편](1790)을 읽은 실러가 감탄하여 완성을 독려하자, 괴테는 1797년에 가서야 다시 집필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11년 뒤인 1808년에 [파우스트] 제1부가 간행되었지만, 이 일을 누구보다 기뻐했을 실러는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애초에 구상했던 제2부의 집필은 그로부터 또다시 한참이 지난 1825년에 시작되었고, 6년 뒤인 1831년, 괴테가 사망하기 바로 전 해에 끝났다. 마법사 파우스트는 16세기에 독일 전역에 유행한 전설의 주인공이다. 그는 악마와 계약한 대가로 평생 갖가지 향락을 즐겼지만 결국 천벌을 받아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 이 단순한 교훈담을 보다 의미심장한 이야기로 바꿔놓은 사람은 엘리자베스 시대 영국 최고의 극작가 중 한 명인 크리스토퍼 말로였다. [포스터스(파우스트) 박사의 비극](1592)에서 주인공은 마법사가 아니라 학자이며, 일신의 쾌락이 아니라 인간으로서는 차마 도달할 수 없는 갖가지 지식을 손에 넣기 위해 악마와 계약한다. 오래 된 전설의 이처럼 신선한 해석은 괴테의 희곡에도 큰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파우스트 전설과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 줄거리(내용)

 

파우스트 전설과 괴테의 <파우스트>는 다르다. 파우스트라는 인간과, 메피스토펠레스라는 악마, 그리고 둘 간의 계약이라는 모티프를 따오긴 했지만 둘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파우스트 전설은 비극이지만, 괴테의 <파우스트>는 환희(구원)이다(미학 私見). 파우스트는 독일에 실존했던 인물이다. 그는 인간으로서 섭렵할 수 있는 모든 학문과 재주를 가졌음에도 만족하지 못했다. 악마는 이승에서 인간으로서는 맛볼 수 없는 최고의 정신적, 육체적 쾌락을 맛보게 해준다며 그를 꾄다. 파우스트는 만약 악마가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켜준다면 24년 뒤 저승에서는 그의 영혼을 악마가 가져간다는 계약을 맺는다. 그는 마술의 힘을 빌려 향락을 누리지만, 결국 만족하지 못한다. 악마는 고대 그리스의 미녀 헬레나를 마술로 재현한다. 파우스트는 그 아름다움에 홀려 그녀를 포옹하지만, 헬레나는 그를 지옥으로 끌고 간다. 24년의 계약기간이 끝났기 때문이었다.

 

여기서의 파우스트는 결국 악마의 꾐에 넘어가 영혼까지 빼앗긴 비극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하지만 괴테의 <파우스트>는 다르다. 그도 역시 학문에서 얻을 수 없었던 새로운 차원의 쾌락을 느끼기 위해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맺지만, 그에게 영혼은 빼앗기지 않고 구원받는다. 파우스트에서 나타나는 비극은 어디까지나 지상의 비극이다. 1부에 나타나는 그레첸의 비극이 단적인 예이다. 파우스트는 젊은이로 변하여 그레첸이란 처녀를 사랑하게 된다. 그레첸을 본 첫 날 그녀를 갈망하여 집까지 찾아간 파우스트에게, 그레첸도 마음을 내어준다. 하지만 메피스토펠레스의 농간으로 그녀는 어머니를 살해하고, 파우스트는 그레첸의 오빠를 죽인다. 게다가 그레첸은 자신과 파우스트의 아이를 강물에 버리기까지 한다. 인정받지 못한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는 사회적인 매장을 뜻하던 시대였다. 그레첸은 감옥에 갇혀 이성을 잃는다.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의 힘을 빌려 그녀를 구하러 가지만, 그녀는 감옥에서 광기에 사무쳐 파우스트를 알아보지 못하다가, 메피스토펠레스의 모습을 보고는 그 악마의 본질을 두려워하며 자신의 몸을 신에게 내맡긴다.

 

서재에 있는 파우스트 묘사한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 ~1669, 바로크 시대에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화가)의 삽화(◀)

 

<파우스트>에는 세 편의 서막이 들어 있는데, 그중 하나인 ‘천상의 서곡’에서는 하느님과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만나 지상에 있는 파우스트를 두고 ‘내기’를 벌이는 장면이 일종의 복선으로 등장한다. <파우스트> 제1부는 일명 ‘그레첸 비극’으로 지칭되는데, 괴테가 젊은 시절에 접한 어느 미혼모의 유아살해 사건에서 소재를 얻은 것이다. 주인공 파우스트는 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섭렵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간의 능력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 많다는 사실에 그만 좌절한 중년의 석학으로 묘사된다. 이때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 앞에 나타나 마법의 힘으로 그의 소원을 이루어주겠다고 제안한다. 파우스트는 자신이 만족한 나머지 어떤 순간을 가리켜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라고 말하게 된다면 패배를 시인하고 영혼을 내놓기로 계약한다. 마법의 힘으로 젊음을 되찾은 파우스트는 순진한 처녀 그레첸을 유혹해서 타락시킨다. 그레첸이 미혼모로 낳은 아기를 죽이고 사형 언도를 받자, 파우스트는 메피스토의 힘을 빌려 그레첸을 탈출시키려 한다. 하지만 그레첸은 도움을 거절하고 순순히 사형 당함으로써 죄 값을 치르고 영혼을 구원받는다.

 

 

 

 

그레첸을 만난 파우스트 묘사한 외젠 들라크루아(Ferdinand Victor Eugene Delacrix 1798~1863, 프랑스 출신의 19세기 낭만주의 예술의 대표 화가)  삽화(▶). 괴테는 [파우스트] 제1부의 프랑스어 번역본에 수록된 들라크루아의 삽화를 격찬한 바 있다.  

 

제2부에서 파우스트는 전설의 미녀인 트로이의 헬레네를 저승에서 불러낸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오이포리온이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자, 헬레네는 저승으로 돌아가고 파우스트는 다시 혼자가 된다. 이제 파우스트는 자신의 쾌락이 아니라 인류의 유익을 위해 살기로 작정하고 대규모의 간척사업에 돌입한다. 그리고 공사를 마치자 자신의 업적에 만족을 느끼며 결정적인 한 마디를 던진다.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이 말과 함께 파우스트는 죽어서 쓰러지지만, 메피스토와 맺은 계약에 따라 지옥으로 떨어지기 직전에 그레첸의 도움으로 구원을 얻는다.

 

<파우스트>는 문학사적으로 질풍노도(슈투름 운트 드랑)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시대를 관통하며 형성된 작품이다. 시대와 함께 변화한 저자의 생각을 반영한 까닭에, 제1부와 제2부는 분위기가 현격히 다르다. 제1부가 중세를 배경으로 마법을 이용한 개인의 욕망 실현을 이야기하고 있다면, 제2부는 근대를 배경으로 기술을 이용한 인류의 욕망 실현을 이야기하고 있다. 흔히 <파우스트>라고 하면 중세적인 분위기의 제1부를 떠올리게 마련이지만,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제2부에서 만년의 괴테가 근대 사회의 도래를 목도하며 내놓은 통찰 중에는 주목할 만한 것이 많다. <이 문단의 글은 번역가, 칼럼니스트 ‘박중서’의 글 인용>

 

 

다섯 개의 비극, 그리고 인간 '파우스트'의 운명

 

<이하 이 제목 하의 글은 『파우스트』(이인웅 번역)를 펴낸 문학동네 ’편집자 리뷰’의 글을 거의 그대로 옮겨왔다. 내용적으로 위의 글과 중복되는 부분이 많지만 이 글은 파우스트의 비극적 측면을 구체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 미학 註> 

 

괴테의 <파우스트>는 ‘비극 제1부’와 5막으로 구성된 ‘비극 제2부’로 구성되고, 그 안에서 시공간을 초월하여 선과 악의 세계에서 활동하는 인간 파우스트의 갖가지 인생행로가 펼쳐진다. 작품의 중심에는 항상 파우스트가 서 있지만, 전개되는 사건과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표출되는 사상에 따라 다섯 개의 비극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비극 제1부는 노학자 파우스트가 세상과 고별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우주의 본질과 창조의 원리를 규명하고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학문을 섭렵하지만, 궁극적 진리를 파악하는 데 실패하고 절망에 빠져 홀로 독배를 마시려던 파우스트 박사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에 넘어가 자신의 영혼을 걸고 악마와 계약을 맺는다. 파우스트는 마술을 이용해 세상의 온갖 현실을 체험하며 향락의 극치를 추구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학자의 비극’이다. 마녀가 준 영약을 마시고 20대 청년으로 회춘한 파우스트는 거리에 나오자마자 순결한 처녀 그레첸에게 반하여 그날 밤으로 그녀를 품에 안으려 했으나 그의 열정은 진실한 사랑으로 발전하고, 그레첸도 사랑의 노예가 된다. 그러나 메피스토펠레스의 농락으로 그녀는 어머니를 살해하고, 오빠를 파우스트의 칼에 찔려 죽게 하며, 영아를 살해하는 죄를 범한다. 그레첸은 죄책감에 사로잡혀 광증을 일으키고, 결국은 감옥에 갇힌다. 파우스트가 그녀를 구출하려고 하지만, 그녀는 정신착란으로 그를 알아보지도 못한 채, 자신에게 내려진 형벌을 감수하고 자신을 죽음에 맡겨 신의 심판을 받고자 한다. 그때 천상에서 그녀가 구원되었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친 여주인공의 운명을 그린 이 장면을 ‘그레첸의 비극’이라고 한다.

 

5막으로 구성된 비극 제2부에서는 종교, 철학, 과학, 예술, 국가, 정치 등 보다 심오하고 포괄적인 가치로 그 주제 범위가 넓어진다. 그레첸의 비극으로 심신에 타격을 입고 쓰러졌다가 자연의 위대한 소생력으로 다시 깨어난 파우스트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어느 봉건제국 황제의 궁정으로 간다. 그곳에서 궁정의 재정난을 구하고 정치생활에 관여하며 막강한 권력과 무진장한 재산을 소유하고 온갖 체험을 하지만, 이 새롭고 거대한 인생에도 파우스트는 영혼의 만족을 얻지 못하고 실망을 느낀다. 돈과 권력을 한 손에 쥔 파우스트의 불만족과 신하들에게 모든 권력을 빼앗긴 실권 없는 황제의 운명이 서술된 제1막이 바로 ‘황제의 비극’이다. 파우스트는 동서고금의 최고 미남 미녀인 파리스와 헬레나(그리스 신화 및 본인의 [문학과 법 이야기] (고전 속의 법 이야기) ‘오레스테이아 3부작’ <http://blog.daum.net/seonomusa/2385> 중 ‘트로이 전쟁’부분을 참조)를 불러내라는 황제의 명을 받고 메피스토펠레스의 도움을 받아 지하세계로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아름다운 헬레나의 환영에 매혹되어 헬레나를 찾아 전설 속의 그리스를 헤매 다닌다. 우여곡절 끝에 헬레나를 찾아 결혼을 하고 아들 에우포리온을 얻게 되는데, 아들이 전쟁에서 죽게 되자 어머니 헬레나도 다시 저승으로 돌아간다. 파우스트와 헬레나의 비극적 운명을 다룬 이 장면을 ‘헬레나의 비극’이라고 한다.

 

파우스트는  과거의 이상세계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와, 고대의 세계에서 얻지 못한 만족을 인류사회의 공익을 위한 헌신적 노력을 통해 얻으려 한다. 광대한 해안지대를 간척지로 개간하여 만인을 위한 옥토를 만들려는 큰 계획을 세운다. 전쟁에서 공을 세워 바다를 하사받고는, 마귀의 힘을 빌려 바다를 밀어내고 둑을 쌓고 운하를 만들어 수백만 인간에게 비옥한 토지를 제공해준다. 지배자 파우스트는 시력을 잃은 상황에서도 자신이 만든 땅에서 수많은 백성들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행복감에 젖어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하고 외친다. 악마와 계약한 이 조건의 말을 함과 동시에 파우스트는 쓰러지고, 이 세계와 영원히 작별한다. 예감으로나마 행복을 느끼며 숨을 거둔 파우스트의 운명을 서술한 부분을 ‘지배자의 비극’이라고 한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의 계약 조건과는 달리, 천사들은 “언제나 열망하며 노력하는 자, 그자를 우리는 구원할 수 있노라”라고 하며 파우스트의 영혼을 하늘나라로 이끌어간다. 최후의 순간까지 ‘언제나 열망하며 노력하는 자’였던 인간 파우스트는 마침내 구원을 받은 것이다.

 

 

독일 문학과 세계 문학에 크나큰 영향을 끼친 괴테 문학의 가치

<이하 이 항의 글은 음악 칼럼니스 '박중서'의 글을 거의 그대로 옮겨왔다>

 

괴테는 80년 넘는 생애 동안 시와 소설, 희곡과 산문, 그리고 방대한 양의 서한을 남겼다. 문학뿐만 아니라 신학과 철학과 과학 등 여러 분야에도 손을 댔고, 유능한 관료이며 탁월한 인격자로도 존경을 받았다. 괴테가 오늘날 독일뿐만 아니라 세계 문학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독보적인 인물인 까닭은 이처럼 오랜 활동 기간과 다재다능함 때문이다. 18세기 중반에서 19세기 초에 이르는 그의 생애 동안에는 산업혁명과 프랑스 혁명, 나폴레옹의 대두 같은 세계사의 굵직한 사건이 연이어 일어났다. 그런 역사적 격동기 속에서 괴테의 문학은 다른 여느 작가와는 다른 깊이와 넓이 모두를 성취했다. 나아가 괴테의 생애는 수많은 공국과 도시로 분열되었던 오늘날의 독일이 처음으로 민족적이고 문화적인 정체성에 눈뜨기 시작한 시기와 맞물렸다. <파우스트>를 비롯한 괴테의 대표작들은 다른 유럽 문학에 비해 낙후되었다고 평가되던 독일 문학의 수준을 일거에 드높였다. “독일 민족의 자의식은 바이마르에서 태어났다”는 문화사가 자크 바전의 지적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일찍이 셰익스피어가 영국 문화와 영어에 끼친 영향 못지않게, 괴테는 독일 문화와 독일어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다. 문학사적으로 괴테고전주의 작가로 분류되지만, 젊은 시절에는 <베르테르> 한 편으로 실러와 함께 질풍노도(슈투름 운트 드랑)의 대표 주자가 되었으며, 나중에는 낭만주의의 선구자로도 평가되었다. 하지만 고전주의적 예술관을 철두철미 견지한 괴테는 오히려 낭만주의에 대해서는 적잖은 거리감을 느꼈던 것으로 전한다. 이는 만사에서 질서와 조화를 중시한 괴테 특유의 성격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령 괴테는 프랑스 혁명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는데, 이는 뉴턴의 광학에 대한 반발로 이루어진 색채 연구와 함께 괴테의 보수성을 드러내는 증거로 종종 언급된다.

 

괴테의 수많은 작품은 이후의 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여러 명시는 슈베르트가 곡을 붙인 [물레질하는 그레첸], [마왕], [들장미]처럼 독일 가곡의 대표작으로 거듭났다. 베토벤은 괴테의 희곡 [에그몬트]에 붙이는 서곡(1810)을 작곡했다. 당대 최고의 작곡가였던 모차르트나 베토벤이 [파우스트]를 오페라로 작곡해 주길 바랐던 괴테의 희망은 끝내 실현되지 못했지만, 훗날 베를리오즈의 칸타타 [파우스트의 겁벌](1846)와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1859) 등의 작품이 좋은 평판을 얻었다. 앙브루아즈 토마의 오페라 [미뇽](1866)은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에 나오는 에피소드를 각색한 것이다. 햄릿이나 돈 키호테가 특정한 인간 유형의 대명사가 된 것처럼, 파우스트는 자신의 호기심 또는 이익을 위해 막대한 위험조차도 서슴지 않고 감수하는 인간 유형의 대명사가 되었다. 괴테의 희곡 제2부에서 파우스트는 인류를 위한 공익사업이라는 이유로 해안을 개간하고 제방과 운하를 만드는 대규모 토목공사에 돌입한다. 개발 과정에서 공사 예정 부지에 사는 어느 노부부가 퇴거 명령에도 불구하고 떠나지 않자, 파우스트는 이들을 눈엣가시로 여기고 내쫓을 궁리에 골몰한다. 급기야 메피스토가 폭력배를 동원해 집에 불을 지르자, 노부부는 그만 빠져 나오지 못하고 불타 죽는 비극이 발생한다. 이처럼 파우스트의 행위는 본질적으로 인간성의 말살을 내포하고 있다.

 

 

괴테의 문학 속의 음악

 

1791년부터 바이마르 궁정 극장의 감독으로 근 26년간 오페라를 지원해 왔던 괴테의 노력은 자연스럽게 문학 작품에 용해되었다. 특히 ‘파우스트’가 그러하다. 괴테는 애초에 ‘파우스트’의 오페라 제작을 염두에 두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이 이야기를 언급하면서 그 음악이 ‘돈 지오바니’의 특성을 가져야 한다고 할 정도로 모차르트를 좋아했고 그의 요절을 아쉬워했다. 바이마르에서 모차르트의 ‘마술피리’가 초연된 지 한 해 뒤인 1795년 괴테는 ‘마술피리 2부’와 ‘파우스트 2부 초안’ 작업을 시작한다. ‘마술피리’의 윤리적 메시지를 자신의 ’파우스트’와 비교하며 격찬하던 그에게 ‘마술피리’는 두 작품의 중요한 원인이 된 것이다. 그 예로 ‘파우스트 2부의 3막’ 오이포리온 장면은 ‘마술피리 2부’와 내용상 일치하는데 여기서 오이포리온은 괴테의 뇌리에 깊이 박힌 모차르트의 형상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이런 동기나 상황적인 면 외에도 괴테의 ‘파우스트’는 구성과 형식 측면에서 음악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괴테는 음악 드라마 형식을 자주 삽입했는데 특히 1부에서 그렇다. 그는 드라마와 음악 드라마 형식을 반복적으로 활용하면서 서로 다른 내용을 변화 있게 표현하려는 자기 의도를 반영하고 있다. 즉 순수하게 언어로만 이루어지는 장면들이 인간의 투쟁과 고뇌, 파멸을 연상시키는 데 반해서 합창을 삽입하는 등의 음악적 수단으로 하는 장면은 거룩한 것, 초인간성, 마적인 요소들을 표현하고 있다. 본래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끔찍한 대상을 묘사하기를 무척 꺼리던 괴테는 음악의 도움으로 이를 무리 없이 표현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2부에서는 오페라 형식이 직접 삽입되어 극적 효과를 강화하고 있다. 2부 3막의 오페라 장면은 괴테가 이 드라마를 오페라로 만들려던 계획과도 관련이 있다. 3막은 희랍극의 모범에 따라 헬레나의 솔로와 트로이 여인들의 합창으로 시작된다는 점이 그러하다.

 

또한 이 작품은 이 작품의 시작을 ‘천상의 서곡’으로 보면 그 대단원의 막은 신이 창조한 세계를 찬양하는 세 천사의 장엄한 찬가로 올려진다. 그리고 2부의 피날레 역시 ‘신비의 합창’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연결시켜 보면 ‘파우스트’는 천상에서 시작해 다시 그 곳으로 돌아가 막을 내린다. 괴테의 친구 첼터헨델의 ‘메시아’ 비평에서 이 오라토리오([교양·상식]의 오라토리오 음악형식을 참조)가 계시-탄생-삶-고난-죽음-부활-승천의 모티브를 통해 구원사의 고리를 잇고 있음을 주지시킨 바 있다. 즉 위에서 시작했으니 위로 돌아간다는 논리인데 이러한 첼터의 ‘메시아’ 해석과 ‘파우스트’의 구성적 일치는 종교 음악에 대한 그의 관심과 지식이 남긴 흔적이라고 보인다. 이러한 구도는 합창에서 합창으로 끝나는 대규모 교회 음악의 상례적 구성과도 일치한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삽입된 합창과 대사, 독백 등은 합창, 아리아, 대사 등으로 구성된 오라토리오의 구조와도 일치한다. 특히 파우스트의 죽음과 천사들의 합창, 이승의 것은 소멸하고 정신적인 것은 영원한 것으로 변화한다는 내용의 피날레는 형식뿐 아니라 내용 자체로서도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다룬 오라토리오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음악 속의 괴테 문학

 

‘파우스트’에 대한 음악적 반응은 먼저 가곡에서 일어났다. 특히 괴테에게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슈베르트가 유명한데, 슈베르트는 17세에 ‘물레감은 그레트헨’으로 그레트헨(Gretchen, 영어 표기: 그레첸- 미학 )을 새롭게 탄생시킨다. 이것은 괴테의 시에 붙인 그의 최초의 가곡이었으며 이 작은 한 편의 시에서 서정적이고 드라마적인 효과를 동시에 창출해냈다. 슈베르트는 몇 주 후 또다시 ‘파우스트’를 소재로 하여 두 독창자와 합창을 위한 ‘교회의 장면’을 썼다. 이 곡은 무시무시하게 파고드는 악령의 레시타피브와 그레트헨의 불안과 고통의 외침 그리고 오르간 반주의 합창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외에도 슈베르트는 그레트헨의 기도 ‘아~ 힘도 없어지고 괴로움이 많으니’ 그리고 발라드 풍의 ‘톨레의 왕’ 등을 남겼다. 가곡의 특성상 등장인물과 상황을 배경으로 하는 단편적 노래들이 대부분이고, 성찰적인 파우스트 보다는 감정의 동요나 표현이 많은 메피스토펠레스와 그레트헨에게 초점을 맞춘 소품들이 대다수다. ‘파우스트’ 자체에 내재한 극적 구성과 효과는 서정적 가곡보다는 오페라의 특성에 더 근접해 있었다.

 

이제 오페라 부분을 살펴보자. 먼저 구노는 1859년 ‘마르가레테’ 라는 제목으로 파우스트를 오페라화 하였다. 괴테의 원작이 2부 구성인데 반해, 구노의 오페라 대본은 1부 내용에만 기초한다. 또한 전체적으로 낭만적 사랑의 이야기를 따른 나머지, 마지막 구원의 장면은 원작에서 처럼 화해 과정의 긴장감을 재현하지 못하는 느낌이다. 베를리오즈는 1846년 오페라 ‘파우스트의 파멸’을 썼는데, 원래 세속 오라토리오로 작곡되었으나 지금은 오페라로 공연된다. 베를리오즈는 여기서 파우스트를 자신 때문에 불행을 자초한 그레트헨을 구하기 위해 영혼을 넘기는 순정파로 그린다. 또한 그럼에도 그는 그레트헨의 순결한 영혼에 의해 구원받지 못하고, 메피스토펠레스와 함께 요술말을 타고 달리다가 지옥에 떨어져버리는 구제불능의 인물로 등장한다. 제목처럼 말이다. 그는 오류로 점철된 방황의 인생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구원에 이르는 본래의 ‘파우스트’에서 사랑을 주제로 한 권선징악적이고 마술적이며 극적인 구성의 ‘파우스트’로 만들어놓았다. ‘파우스트의 파멸’에서 파우스트는 존재의미를 추구하는 정신적 초인이 아닐 사랑에 고뇌하는 평범한 한 남자일 뿐이며, 메피스토펠레스도 신과 계약을 전제로 움직이는 필요악이 아닌 그저 악일뿐이다. 슈만에 의해 1848~49년에 쓰인 ‘괴테의 파우스트로부터의 장면들’ 역시도 베를리오즈와 비슷한 관점에서 쓰였다. 보이토의 1868년 작 ‘메피스토펠레스’는 사랑 이야기가 중심이었던 구노의 오페라와 달리 메피스토펠레스의 악마성과 파우스트의 끝없는 탐구가 대비적으로 오페라를 이끌어 가고 있다. 선과 악이 이원적으로 대립된 상황에서 메피스토펠레스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악마적 요소들이 이 오페라의 전체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으며 파우스트와 메피스토, 선과 악의 갈등구조가 강조된다. 내용적인 면에서 보이토의 오페라는 원작의 형태와 해석 방향에 가장 근접한 오페라로 평가된다. 오페라의 구성도 원작처럼 프롤로그, 에필로그를 포함한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고 배경도 방대하다.

 

서술의 방식을 사용하는 문학이 가장 만나기 어려운 음악 장르는 언어 없이 순수하게 소리로만 전달되는 관현악이나 교향곡일 것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다. 표제음악이라는 개념이 없었다면 그러한 만남은 어려웠을 것이다. 표제음악은 음악을 수단으로 하여 묘사의 대상을 표현하는 음악이다. 관현악곡과 교향곡에서 문학 작품은 표제음악의 형태로 간접적 영향을 준다. 만약 표제음악이 없었다면 ‘파우스트’를 포함한 많은 문학 작품은 반드시 가사를 동반하는 형태로만 존재했을 것이다. 이것을 잘 실천한 사람으로는 우선 리스트가 꼽힌다. 리스트가 1857년에 완성된 교향곡 ‘파우스트’는 3악장으로 구성되어서 각각이 파우스트-그레트헨-메피스토펠레스를 그리고 있다. 이들은 또 각기 ‘빠르게-느리게-빠르게’라는 템포의 변화를 보여준다. 이때 1악장과 3악장, 즉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 악장에는 같은 템포가 주어짐으로써 이 두 인물의 공생관계가 묘사된다. 반면 그들 사이에 위치한 안단테 소아테 악장은 그레트헨의 본질적 이질성을 표현해 준다. 그뿐 아니라 악장 내에서 템포 변화는 주인공들의 감정의 기복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특히 3악장은 변화무쌍한 메피스토의 간계를 그려내는 최고의 음화(音畵)로 유명하다. 리스트는 방대하고 복합적인 ‘파우스트’의 개개 장면을 줄거리에 따라 음악적으로 하나하나 번역하려는 무모한 시도를 처음부터 포기했다. 대신 주요 인물인 세 사람의 특성을 음악적으로 재현한 후, 종지부인 ‘남성 합창과 테너 솔로를 위한 신비의 합창에서 전체 작품의 핵심 메시지를 언어를 통해 전달하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교향곡의 하이라이트는 ‘신비의 합창’이다. 이것은 원작의 대단원과도 일치되는 것으로, 이러한 시도는 이 교향곡을 그 어느 오페라보다 훌륭히 ‘파우스트’를 해석한 것으로 간주되게 하는 계기가 됐다. 또한 멘델스존은 ‘발푸르기스의 밤의 꿈’에 감동한 나머지 현악 8중주곡 Eb장조 op.20의 3악장에 빠른 3박자의 스케르조 형식을 통해 이것을 상징적으로 옮겨 놓았다. 두 배로 편성된 현악 사중주의 자유로운 구성뿐 아니라 환상적이면서 유려한 현의 아름다움이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는 초기 작품이다.

 

 

프란츠 리스트의 교향시‘파우스트 교향곡(Faust Symphony)'

 

교향시(交響詩)’라는 새로운 형식의 음악을 창안한 프란츠 리스트(Liszt, Franz 1811~1886, 헝가리)가 <파우스트 교향곡>을 작곡한 것은 바이마르의 궁정악장으로 재직 중이던 1854년의 일이었다. 당시 그는 연주에 70분 이상이 소요되는 이 대작을 불과 두 달 남짓한 단기간(8월~10월)에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을 완성하기 24년 전(1830년) 당시 파리에 있던 리스트는 ‘표제음악’을 완성한 베를리오즈(Berlioz, Louis Hector 1803~1869, 프랑스)의 <환상 교향곡>이 초연되기 하루 전날인 1830년 12월 4일 그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베를리오즈로부터 파우스트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감명을 받아 괴테의 <파우스트>를 직접 읽게 되었고, 그 후 오랜 기간에 걸친 자료수집과 작품구상을 통해 1854년에는 파우스트 교향곡을 완성하여 베를리오즈에게 헌정했다. 이 작품은 1857년 바이마르 궁정극장에서리스트 자신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참고] * 표제음악(Program Music)이란 절대음악이라고 할 만큼 형식미를 지니고 있는 고전음악에다가 문학적인 요소를 가미한 음악을 말한다. * 교향시(Symphonic poem)란 어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또한 악장을 나누지 않는 음악으로 표제를 가진 독립된 단악장(單樂章)의 관현악곡을 말하며 시(詩), 전설과 같은 문학적인 내용이나 풍경 따위의 회화적인 내용을 표현한 것으로, 형식은 자유롭다.

 

리스트가 이 작품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을 좀 더 살펴보면, 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1840년대에 리스트는 괴테의 <파우스트>에 기초한 오페라를 쓸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산발적인 아이디어들과 스케치들만 나왔을 뿐 그 구상은 구체화되지 못했다. 1849년에는 그가 머물던 바이마르에서 괴테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고, 그 기간에 그는 슈만의 <괴테의 파우스트로부터의 장면들>(Szenen aus Goethes "Faust") 중의 일부를 지휘했다. 또 1850년 여름에는 네르발이 바이마르를 방문하여 두 사람은 파우스트에 관해 열띤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리스트는 <파우스트>를 음악화 하는 데에는 아직 확신을 갖지 못했다. 무엇보다 파우스트라는 인물의 복잡한 성격을 어떤 식으로 정리하고 표현할 것인가, 그것이 가장 큰 난제였다. 그러나 결정적 전기를 제공한 것은 다시 한 번 베를리오즈였다. 1852년 바이마르에서 그가 자작의 오페라 <파우스트의 겁벌>(La Damnation de Faust)을 직접 지휘했던 것이다. 리스트는 다시금 머뭇거렸지만, 결국 그 여파로 파우스트에 관한 ‘교향곡’을 쓰겠다는 계획을 확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요아힘 라프와 같은 헌신적인 조수들로부터 기술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마침내 <파우스트 교향곡>을 써냈다. 1854년에 작곡이 일단락된 작품은 1857년 9월 5일 바이마르 궁정극장에서 리스트 자신의 지휘로 초연되었는데, 그 사이 마지막에 ‘신비의 합창’ 장면이 덧붙여지는 중요한 변경이 있었다. 또 1880년에는 2악장에 10마디가 추가되기도 했다. 아무튼 리스트는 이 교향곡에서 문학작품인 <파우스트>의 이야기를 다루려고 한 것이 아니라 좀 더 심각한 철학적 문제에 음악을 적응시키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구노, 베를리오즈, 부조니, 슈만, 프로코피예프 같은 대작곡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었다. 오페라나 오라토리오, 칸타타 등으로 파우스트는 부활했고, 고전 양식의 빠름-느림-빠름의 양식을 가진 리스트의 '파우스트 교향곡'은 1악장은 파우스트, 2악장은 그레첸, 3악장은 메피스토펠레스의 성격을 묘사한다. 괴테의 <파우스트>와 리스트의 <파우스트 교향곡>은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신비의 합창>으로 끝을 맺는다. 1악장(Faust)에 있어서는 진리에 대한 열망과 인간의 지식이 악마의 부정적인 말에 의해 암초에 부딪치는 것을 묘사하고 있고, 2악장(Grechen)에 있어서는 Faust와의 만남에 의해 꽃 피려는 소박하고 순진한 정신과 동시에 그 정신이 애인을 구하려는 호흡을 느끼게 하며, 3악장(Mepistopeles)에서도 "모든 것에 대한 부정, 파괴에 대한 쾌락, 항상 부정하는 정신으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천국의 문'을 여는 최후의 남성합창은 종교적이기까지 하다. 리스트는 각 악장에서 각 인물을 성격적으로 그려 놓은 셈인데, 다시 이것은 리스트 자신의 마음의 표출이기도 한 것이다. 즉 1악장 '파우스트'는 진리에 대한 열망과 인간의 지식의 한계를 명백히 하는데 이러한 것 자체가 인간 리스트에게도 해당된 것이었다. 2악장 '그레첸'에서는 리스트의 전 여성에 대한 애정과 찬미가 있으며, 항상 부정하는 정신을 나타낸 3악장 '메피스토펠레스'에서는 리스트의 전 생애의 시기를 통해서 발견되는 악마주의가 표현된다.

 

교향시의 형태를 확립시킨 리스트는 교향시의 방법을 고전적인 교향곡에도 활용해보려고 했다. 이리하여 '파우스트'교향곡과 '단테'교향곡을 작곡했다. 그렇기에 이 두곡의 교향곡은 종래에는 없었던 참신함을 지니고 있다. '파우스트' 교향곡은 3개의 악장과 종말 합창을 지니고 있으며, 이것만을 보면 표면적으로는 베토벤의 교향곡 9번과 유사함을 상기시키기는 하나, 정신적인 자세로는 베토벤의 교향곡과 전연 다른 것이다. 종래의 교향곡에 있어서 주제의 제시는 제시부에서 보다 전개부에서 성격을 명백히 하는데 비해, 리스트는 각각 3개의 악장에 '성격상'으로서, '파우스트', '그레첸', '메피스토 펠레스' 등의 세 인물의 이름을 마치 표제인 것처럼 내세움으로써 이 인물들의 성격을 거기에서 각기 음악에 의해 묘사하려 했으며 이로 인해 베토벤과의 차별성이 더욱 드러나고 있다. 아무튼 괴테의 '파우스트'라는 인물상에 바탕을 두어 주제나 모티프로서 인물의 특성을 여러 각도에서 묘사해 나가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주제나 동기에 처음부터 명확한 표현이나 의의를 지니도록 하고 있다. 이러기에 이들의 악장에서 고전적인 동기의 발전이나 전개라는 것을 중요시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도 고전적인 교향곡과 다른 점이 있다. 종말 합창은 또 베토벤스럽지 않고 누구보다도 자신인 리스트 풍의 '암흑에서 광명으로'의 태도를 생각하게 한 것으로, 천국에의 길을 암시하고 있다. <파우스트 교향곡>은 제목에도 불구하고 고전적인 교향곡과는 궤를 달리하는 작품이다. 차라리 이 작품은 리스트 자신이 창안했던 교향시의 방법론을 교향곡의 구조와 융화시키려 했던 새로운 시도의 산물로 봐야겠다. 리스트는 여기서 교향곡의 고전적 수법인 발전과 확대라는 기법을 사용하지 않았고, 베를리오즈처럼 일정한 줄거리에 따라 사건을 묘사해 나가는 방식을 취하지도 않았다. 사실상 이 작품은 서로 연관된 주제와 내용을 가진 3개의 교향시를 한 데 묶어놓은 ‘연작 교향시’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리스트는 세 악장에 각각 ‘파우스트’, ‘그레트헨’, ‘메피스토펠레스’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각 악장은 괴테의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세 인물을 대상으로 한 음악적 스케치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리스트는 이 작품에 ‘세 인물의 초상’이라는 부제를 달았던 것이다.(이 문단의 글은 음악 칼럼니스트 황장원의 글을 그대로 인용한 것임)

 

각 악장별 감상(해설

 

1악장(Faust) - Lento Assai - Allegro Impetuoso. C major - C minor : 가장 중요한 악장이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안개 속”같은 화음과 비올라, 첼로 등이 연주하는 선율이 조용하고도 암시적인 성격으로 연주된다. 이것은 Faust의 탐구심, 즉 세계의 비밀에 대한 노력을 묘사 하는 것이다. 아울러서 인간존재의 약한 것도 이 선율이 보여준다. 그러다가 곡은 속도를 갑자기 빨리 하면서 성격이 격하게 변하게 된다. 새롭게 불붙은 파우스트의 야심을 나타내고 있다. 이 힘찬 울림은 희망, 격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곡은 비탄에 젖어들고 만다. 파우스트의 고뇌와 호소, 체념이 그려지는 것이다. 곡이 다시 격해지고, 그런 후 다시 고요가 깃들면서 사랑을 그리워하는 ‘사랑의 노래’가 곱게 흐른 뒤 다시 격동에 휩싸이면서 곡은 장엄한 기분 속에서 끝난다.

 

2악장(Grechen) - Andante Soabe : 가장 널리 알려진 곡으로서, 그레첸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곱고, 포근하게 그리고 속삭이듯 조용히 묘사되고 있다. 파우스트t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한마디로 여성적인 곡이며, 이해하기 쉬운 곡이다.

 

제3악장(Mepistopeles) - Allegro Vivace. Ilonico. & (Finale Chor) - Andante mustico : 인간의 꾸준한 탐구심과 동경과 행위에 대한 의욕, 심지어는 순결한 사랑까지도 부정하고 야유하는 메피스토펠레스의 모습을 리스트는 이곡에서 가능한 한 추하게 표현하려고 했다. 따라서 1악장 첫머리의 동기라든지 ‘사랑의 노래’ 등이 여기에서는 추한 모습으로 변형되어 연주된다. <종말의 합창> 오르간이 추가되어 현악기와 함께 남성합창을 끄집어내는 곡으로서 매우 장중한 성격의 곡이며, 종교적이기까지 하다. 하프도 나중에 추가됨으로써 곡은 더욱 숭고한 느낌을 주고 합창이 끝난 후 10마디의 관현악으로 곡을 모두 끝낸다.

 

 

맺으면서(epilogue)

 

아래의 글은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1875~1965)가 괴테 사후 100주년을 맞아 자신이 정신적 지주로 삼고 있던 괴테를 회고하여 현대사회의 비인간화 현상의 극복 방안이라는 주제로 행한 강연록의 일부이다. 슈바이처는 여기에서 역사상 위대한 사상가들이 후세들에게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를 제공해 준다는 전제 아래 괴테가 말한 '진정한 인간성'의 개념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고귀함을 망각한 채 외면적 가치에 매달리는 현대 사회와 현대인들의 문제점을 지적한 다음, 결론으로 괴테의 '진정한 인간성'을 실천한다면 현대 사회의 비인간화 현상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류의 역사에는 위대한 사상가들이 많다. 그러한 사상가들은 현실의 문제를 새로운 관점에서 비추어 보고 해결하는 지혜를 후세들에게 제공해 준다. 독일의 시인이자 사상가인 괴테(Goethe)도 마찬가지이다. '진정한 인간성'을 추구하는 그의 사상은 현대에 사는 우리에게도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남아 있다. 괴테는 정신세계에 다양한 요소를 지닌 사람이었다. 예리한 판단력, 풍부한 상상력 그리고 예민한 감수성을 괴테만큼 두루 지녔던 사람도 드물다. 그런데 이런 특성들이 선천적이라기보다는 자기 스스로 노력하고 탐구하여 얻은 것이라는데 그의 매력이 있다. 그는 평생 동안 완전한 자기 자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다. 시인이며 자연과학자이고, 사상가이며 정치가인 삶을 살았지만, 그는 이 모든 것에 앞서 인간다운 인간이 되고 싶어 했다. 그가 말하는 '진정한 인간성'은 이러한 삶의 목표를 반영하고 있다. 여기서 인간다운 인간은 한 곳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며, 동시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고결하고 선량하며 동정심을 잃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아울러 그 바탕에는 내면세계를 부단히 성찰하면서 자신의 참 모습을 일구어 가는 진지함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품성을 두루 갖춘 인간성을 괴테는 자연과 유사한 상태로 간주하였다.

 

'진정한 인간성'을 강조하는 괴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현대 사회의 척박함 속에서도 개인이 인간성을 자유롭게 실현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 본다. 여러 가지 점에서 현대인은 자연스럽지 못한 상태로 변해 가고 있다. 인간성의 근원이 자연에서 점점 멀어지면서, 현대인은 자신의 참 모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물질이나 이념과 같은 외면적 가치에 더욱 매달리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왜곡된 인간성에 의해 저질러지는 폭력과 살생을 자주 목격한다. 인간에게 근본적으로 부여된 고귀함을 잊은 채 욕망이 이끄는 대로 휩쓸려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어둠 속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떠오른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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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서노무사실무노동법연구실
글쓴이 : 미학 서영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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