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2. 15. 18:34ㆍ보고픈 서화
※ 명대(明代) 화가 정운붕(丁雲鵬)의 <세상도(洗象圖)>
衆盲摸象 各說異端
(중맹막상 각설이단)
장님이 코끼리를 더듬으며
저마다 딴 소리를 하네
☞ 주희(朱熹/남송), ≪답파숙도(答播叔度)≫
- 여기서 摸의 독음은 '막'이다. '본뜨다'(模/摹)는 뜻으로 쓰일 때는 '모'로 읽지만, '더듬다'는 의미로 쓰일 때는 '막'으로 읽는다. 비슷한 뜻을 가진 말로 群盲評象·瞎者摸象·群盲撫象 등이 있다.
※ 현대 중국화가 소화(蕭和)의 <洗象圖> 원광(圓光) (2006年作)
- 범인(凡人)은 모든 사물을 자기 주관대로 판단하거나 그 일부밖에 파악하지 못함을 비유한 말이다.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卷32) 또는 ≪北宋涅般經≫ <사자후보살품(獅子吼菩薩品)>에 관련 고사(故事)가 전한다.
이 고사에서 코끼리는 불성(佛性)을 말하는 것이고, 소경들은 중생(衆生)을 비유한 것이다. 중생들은 자신들이 만진 부위가 코끼리의 전부인양 말하고 있다.
불성을 부분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은 각각 부처가 따로 있다는 것으로, 모든 중생에게 다 불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요즘에는 본래의 뜻과는 달리, 사물(事物)을 볼 때 일부분으로 전체를 판단하는 오류(誤謬)를 범하는 태도를 비유적으로 일컫고 있다. 말하자면, 나무를 보고 숲을 보았다고 판단하는 잘못을 말한다.
- 양주(襄州) 청계산(淸谿山)의 홍진선사(洪進禪師)가 말하기를 "衆盲摸象 各說異端 忽遇明眼人 又作麽生?"(장님이 코끼리를 더듬으며 저마다 다른 소리를 하는데, 문득 눈 밝은 이를 만나면 또 어찌할 것인가?)[☞ 석도원(釋道原/宋),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卷24) <홍진선사(洪進禪師)>]
- 황룡도진(黃龍道震) 선사가 말하기를 "少林冷坐 門人各說異端 大似衆盲摸象"(소림에 덩그러니 앉으니, 문인이 저마다 딴소리를 하는데 마치 장님이 코끼리를 더듬는 것과 같더라) [☞ 보제(普濟/宋), ≪오등회원(五燈會元)≫(卷18)]
※ 명대(明代) 화가 최자충(崔子忠)의 <洗象圖>
- 불교 회화 가운데 코끼리가 등장하는 그림이 있다. '세상도'(洗象圖) 또는 '소상도'(掃象圖)라는 이름이 붙은 그림이 대표적이다.
코끼리가 불교 교리와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는지는 명확히 알려진 바 없다. 다만 코끼리를 뜻하는 한어(漢語) 象과, '모양'이나 '형상'을 의미하는 불교용어 相은 발음이 비슷하다.
이로부터 "코끼리를 쓸어 낸다"는 '掃象', "코끼리를 씻어 낸다"는 '洗象'은 "모양과 형상에 대한 집착을 쓸어(씻어) 낸다"는 의미로 이어진다.
'세상도'(洗象圖)나 '소상도'(掃象圖)는 우리가 실체라 여기는 것들이 사실은 꿈(夢)·환영(幻)·물거품(泡)·그림자(影) 같고 또한 이슬(露)이나 번개(電)와 같이 허망한 것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불화(佛畵)인 셈이다.
발음의 유사성이 의미의 전이로 이어지는 사례는 이 밖에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이를테면, 박쥐(蝙蝠)를 뜻하는 한자어 蝠과 福의 발음이 유사한데로부터 박쥐가 "복을 가져다 주는 상서로운 동물"로 여겨지는 경우도 한 예가 될 것이다.
※ 정운붕(丁雲鵬)의 <掃象圖>
※ 정운붕(丁雲鵬)의 <洗象圖> (1576年作)
※ 명대(明代) 화가 김성(金聲)의 <선현세상도(善賢洗象圖)>
※ 청대(淸代) 화가 낭세령(郎世寧)의 <洗象圖>
※ 청대(淸代) 화가 전혜안(錢慧安)의 <洗象圖>
※ 청대(淸代) 화가 유언충(劉彦冲)의 <洗象圖>
※ 청대(淸代) 화가 여진(呂鎭)의 <洗象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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