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7. 9. 23:45ㆍ백운계곡
지리태극종주 들날머리 옆의 백운동계곡을 찾아 나섰다.
지난 6월중순경 설악 귀떼기청봉에서 접질려진 왼쪽 발이 아직도 좋지 않아서
당초 백운계곡으로 올라... 마근담봉에서 수양산 쪽으로 내려오지 않고 오른쪽 계곡으로 내려와서 덕산교까지 내려오는 계획을 잡았는데 계속 계곡만 타고 올라가니 쉼없이 내려오는 계곡수 마냥 시간만 철철 흐르는 듯하여 계곡의 거의 끝부분까지 올라갔다가 되돌아 오는 길을 택했다.
하늘색부분이 다녀온 코스, 지리태극(붉은 실선)은 덕산교 못가서 시무산으로 오르는 것부터 시작된다.
당초 생각한 것보다 계곡이 상당히 깊어서 돌아와서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경남의 향토사 부분에서 전문가인 강동욱기자님의 글이 돋보였다. 그의 글을 빌려온다.
아래글은 지리산 백운동 계곡에 대해 지방지 신문으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경남일보의 강동욱기자(문학박사)가 2001년 5월 1일에 쓴 글을 퍼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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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백운동 계곡
여기에 거론된 덕산동, 청학·신응동, 용유동, 백운동, 장항동은 남명이 덕산에 들어오기 전 여생을 보내기 위해 물색한 장소들로 지리산에서 경치가 빼어난 곳이다.
오랜 가뭄끝에 반가운 단비가 촉촉히 내리던 날. 기자는 남명이 노년을 보내고자 했던 곳 중 한 곳인 백운동을 찾았다.
행정구역으로는 산청군 단성면 백운리. 본래는 진주 금만면 지역으로 백운동이라고 했는데, 1906년 산청군 금만면 지역에 편입된 곳이다. 그러니까 1906년전까지는 진주 땅이었다. 다시 1914년에 산청군 단성면에 편입되어 산청땅이 되어버렸다.
백운동은 단성면과 시천면의 경계 지점에 있다. 입덕문 들어오기 전 길가에 조그마한 표지판에 백운동 계곡이라고 쓰여 있으나 유심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가 쉽다.
백운동 표지판을 따라 좁은 골짜기로 들어서면 마을이 나오는데 백운마을이다. 마을을 지나 2킬로미터 쯤 올라가면 맑은 물이 넓은 바위 위로 흰베를 깔아 놓은 듯이 흐르고 있다. 웅석봉 줄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30리를 내려오면서 바위와 부딪쳐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이곳이 바로 남명이 즐겨찾았던 백운동 계곡이다.
모처럼 물기를 머금은 신록은 푸르름을 더하고, 물은 제법 소리내며 흐르는 백운동 계곡은 선경(仙景)을 연출하는 듯 했다.
지금 사람들은 단순히 야유회 장소로 즐겨 찾는 이곳을 약 500년전 남명이 지나가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백운동에 놀며(遊白雲洞)
천하 영웅들이 부끄러워 하는 바는(天下英雄所可羞)
일생의 공이 유땅에 봉해진데 있다네(一生筋力在封留)
가없는 푸른 산에 봄바람이 부는데(靑山無限春風面)
서쪽을 치고 동쪽을 쳐도 아직 공을 이루지 못했다네(西伐東征定未收)
옛날 한고조 유방이 일등공신 장량에게 제(齊)나라 땅 3만호를 봉해주자, 장량이 “3만호는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사양하면서 “조그마한 유(留) 땅만 봉해 주시면 만족합니다”라고 했다. 그는 나중에 모든 부귀영화를 버리고 적송자를 따라 놀았다.
이 시의 뜻은 큰 공을 세운 장량은 자기 공을 사양하고 물러날 줄 아는데, 천하의 영웅들은 사양할 줄 모르니, 여러 영웅들이 장량의 처신을 보고서 부끄러움을 느낄 것이라는 뜻이다.
남명은 백운동을 찾아 안분지족(安分知足)할 줄 알았던 장량을 생각했다. 백운동에서 남명은 제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알았던 장량을 생각했다. 왜일까.
당시 조정의 요직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부귀영화만을 좇아 싸움질만 일삼고 백성들의 궁핍한 삶을 돌아볼 생각은 안중에도 없었다. 이런 조정에 벼슬을 하기 보다 은거하면서 평생을 보낸 남명은 앞으로 자신이 살게 될지도 모를 백운동에 들러 세태를 나무란 것이다. 이는 가난한 생활 가운데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즐기려는 남명의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백운동 계곡 용문폭포 근처 바위에 남명을 숭모하던 이 지역 선비들이‘南冥先生杖구之所(남명선생 장구지소)’라는 글을 남겼다.
남명 선생이 다녀간 곳이라는 뜻이다. 글씨가 워낙 작아 찾기가 힘들었지만, 백운동 계곡에 남명의 숨결이 깃들어 있는 유일한 흔적인 셈이다.
오랫동안 백운동에 살아오면서 남명의 흔적을 세상에 알리려 노력해온 11대손 조만수씨(74)는 “남명의 흔적이 있다는 것을 알리려고 여러번 안내판을 세웠는데, 놀이객들이 그 안내판을 뽑아서 불을 지폈다. 그래서 지금은 안내판 하나 없어 남명의 흔적을 찾으러 오는 사람들이 애를 먹고 있다”며 한숨을 쉬며 말을 했다.
남명이 살고자 했던 백운동 계곡은 유원지로 변해있다. 남명의 숨결이 깃들어 있는지 없는 지 알지도 못한 채 놀이객들은 계곡에 발을 담그며 옛날 사람들의 운치를 이야기하곤 한다.
기자를 안내했던 남명 후손 조종명씨(산청군 삼장면)는 계곡을 내려오면서“산을 오르는 것은 선을 행하는 것 같고, 산을 내려오는 것은 악을 행하는 것과 같다”라는 남명의 말을 기자에게 전한다. 남명의 운치는 모름지기 이와같은 것이 아닌가 싶다.
/강동욱기자 kdo@gnnews.co.kr
♣남명이야기 : 남명학파란
15세기 후반 점필재 김종직을 영수로 한 경상도 출신의 신진 선비들을 영남사림파라고 한다면, 16세기 중반이래 남명 조식 퇴계 이황의 학통을 포괄해서 영남학파라고 한다.
이 영남학파는 다시 남명학파와 퇴계학파로 구분이 되는 데, 남명학파는 진주를 중심으로 한 경상우도 지역이 중심이 되며, 퇴계학파는 안동을 중심으로 한 경상좌도 지역이 중심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남명학파는 남명 학문의 핵심 사상인 경의(敬義)를 학문 요체로 삼아 정진하였다. 진주지역의 수우당 최영경, 각재 하항, 합천지역의 내암 정인홍, 성주지역의 동강 김우옹, 한강 정구 등이 남명학파를 주도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내암 정인홍, 송암 김면, 망우당 곽재우 등은 남명의 가르침을 실천에 옮겨 의병을 일으켜 국난극복의 일익을 담당하기도 했다.
남명 탄신 500주년이 갖는 의의 중 하나가 학파를 형성한 남명의 학문과 사상을 되돌아 보는데 있다./강동욱기자
[10:12]영산산장 안에 주차하고 오른쪽으로 올라 백운동계곡으로 내려 가려고 하니 계곡옆의 토담산장으로 들어가서 계곡으로 내려가야만 했다. 토담산장 주인아저씨께 부탁하니 쉽게 들어가라고 한다.
그런데 조금 올라가니 바위 때문에 도저히 골치기로 해서 올라갈 수가 없다. 때문에 사진 상의 주차장이 아닌 위의 영산산장을 통해서 왼쪽 도로로 나와서 조금 올라가니 계곡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있었다.
처음 가는 분들은 이 삼거리 주변에서 오른쪽 토담산장 위쪽에다 주차해 두고... 다시 이리로 내려와서 왼쪽 도로로 올라가면 좋을 듯 하다.
[10:15]위 삼거리에서 토담산장으로 가는 중 다리 위에서 백운계곡을 보고 찍은 사진
[10:15] 위 사진을 땡겨본 사진... 왼쪽은 영산산장이다.
[10:21] 계곡에 접어들면서 지리산에는 단속에 알탕할 수가 없는데 이 곳은 지리산국립공원에 포함되지 않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백운동 계곡 또한 지리산 어느 계곡에 못지 않다.
[10:29]계곡산행은 첨엔 옷이 빠질까봐 염려하지만 가다보면 그냥 빠지기 일쑤다.
[10:35]상당히 깊은 소도 보였다. 백운산 방면에서 내려오는 계곡수도 합류되고...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
[10:39]조그만 폭포마다 저마다 이름과 사연이 있을텐데... 그런 얘기를 들려줄 사람이 없다.
[10:43]남명 선생님은 그 옛날 이 곳에 올라와 무슨 생각을 했을까?
[10:44]가도가도 절경이 계속 펼쳐진다.
[10:54]계속 계곡따라 올라가는데 흙은 거의 보이지 않고 암반이나 바위를 딛고 간다.
[11:01]
[11:03]
[11:47]약 30분간 이 폭포로 오기전에 휴식을 취했는데... 아마도 이까지 올라오는데는 1시간 남짓될 듯하여 이 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가장 좋을 듯 하다. 이 폭포 위엔 거의 사람이 없다.
[11:50]
[11:53]
[11:56]
[12:03]'깊은산속' 왈 "이젠 맨발로 간다" <= "고마, 미끌어진다.. 신발 다시 싣어라! 좀 빠지모 우뜯노!"
[12:03]
[12:09]
[12:12]
[12:15]사진 찍고 맨 나중에 폭포 왼쪽으로 붙어 올라가다가 주루~룩... 왼쪽 중지 손톱 3mm 정도 깍여나간 끝에 스톱을 하고, 조심조심하면서 올라갔었다.
[12:18]
[12:21]움직일 때마다 가히 절경이다.
[12:23]
[12:29]
[12:30]백운계곡을 두고 양쪽에서 올라오는 길이 만나는 지점인 듯 하다. 위 지도 참조
[12:30]위 사진의 바로 위 지점이다.
[12:35]
[12:37]돌담같은 인공 구조물이 있었다.
[12:38]아래를 보면서
[12:39] 아마도 이 지점 약간 위쪽에 올라가서 점심시간을 무려 1시간 40~50분동안 보냈었는 듯 하다.
[16:07]어떻게 된 것인지 위 사진이 찍힌 사진이 없고 보니 이 시간이 될 때까지 먹고 놀았는 듯 하다.
[16:09]
[16:19]
[16:36]이 시간이 될 때까지 올랐는데... 석용이가 시간이 오후4시30분이 넘어서 내려가기로 결정.
참으로 아름다운 계곡이었다.
계곡산행후 오른쪽 등로를 통해 내려가서 토담산장에서 백숙을 1마리 시켜먹고 돌아왔는데, 토담산장의 아주머니가 사남 방지 출신이어서 더더욱 정이 갔었다.
지리산 주요 계곡산행도 해보았지만 지리 주능과 상당히 떨어진 이 곳을 와서 보고는 너무 아름다운 곳이라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특히 가족과 함께 와서 야영하면서 휴가를 즐기기에도 좋은 것 같다.
특히 이 계곡을 중심으로 다양한 산행코스가 자연스럽게 만들어 질 수 있는데... 현재 영산산장 아래까지 길이 좁아 확포장 공사 중에 있었다.
시간이 나면 가족과 함께 꼭 가고 싶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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