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말러 / 교향곡 9번 라장조 이별과 죽음

2018. 1. 2. 20:02듣고싶은 곡


Mahler Symphony no.9 D major

말러 / 교향곡 9번 라장조 이별과 죽음

Mahler (1860-1911)
data & makep-shomron

4악장. Adagio. Sehr langsam

Leonard Bernstein

Berliner Philharmoniker

교향곡 제9번 "이별" D장조

말러는 이 「제 9번」교향곡에서 또다시 성악을 제외하고 순기악곡을 작곡하였다. 구성적으로는 4개의 악장으로 되어 있는데 전통을 벗어나 제1과 제4악장을 느릿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 기법적으로도 이제까지의 교향곡보다 진취적이며 선적(線的)인 대위법을 교묘하게 사용했고, 화성법을 확대하여 새로운 화성 감각을 내는 등, 그러한 것들로 하여금 균형을 넓혀 음체계의 개혁마저도 보이려 했다. 여기에는 조성 조직상 음악의 하나의 한계를 한다는 사람도 있다.

말러는 이 곡을 작곡하고 있을 무렵, 체력적으로 무척 지쳐있어서 죽음까지도 종종 생각했었다. 이 곡의 바로 앞에 쓴 「대지의 노래」를 「제 9번」교향곡으로 해야되는 것을 흔히 「제 9번」이라는 작품 주변에 일고 있는 숙명적인 선배 작곡가들의 생애를 참작해서 「제 9번」이라 부르는 것은 기피할 정도이기도 했다. 때문에 이번에 작곡된 「제 9번」교향곡에는 말러의 죽음에의 직관적인 자세가 없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이 제 1악장의 전개풍 부분에 대해 「오! 나의 사라져 버린 젊은 나날들이여. 오! 모두 흘러가 버린 사랑이여...」라고 쓰기도 했고 제 3악장의 첫 머리에는 스케치 할 때 「아폴로에 있는 우리 형제들에게」라고 기록했고 제 4악장의 최후를 「죽는 것처럼」끝내고도 있다. 이와 같이 이 곡에는 죽음과 관계가 있다는 것은 많은 말러 연구가들도 그 점을 인정하고 있으며, 알반 베르크까지도 부인에게 보낸 서간에서 이 곡의 악곡 분석(아날리제)에 즈음해서 그것을 강조하고 있다.

1909년 여름, 이 「제 9 교향곡」의 작곡에 착수하여 다음 해 4월1일에 완성했다. 주로 토프라하에서 가까운 알트 슈르델바하에서 피서 중에 작업했으나 10월에 뉴욕에서 지휘자로서의 바쁜 생활의 사이사이에 진행시켜 결국 완성한 셈이다. 그리고 말러는 그 다음해 5월 11일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말러의 사후 1년쯤 후 1912년 6월 12일에 빈에서 제자인 브루노 발터의 지휘로 초연 되었다.

Berliner Philharmoniker


Leonard

Bernstein

 

Prizes

- 1992: Record Academy Prize, Tokyo
- 1992: Toblacher Komponierhauschen
- 1993: Grammy

세상을 향한 이별, 피안에 대한 동경, 말러 교향곡 9번

말러 교향곡 9번은 모든 음악적 시도에 대한 마지막 결단이라고 볼 수 있다. 순서대로라면 마땅히 이 작품이 ‘교향곡 10번’이 되어야 할 것이나, 죽음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강박관념과도 같은 두려움 때문에 「대지의 노래」를 교향곡으로 인정하고도 9번이라는 번호를 붙이지 않았다. 여러 선배 교향곡 작곡가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9번이라는 숫자가 그에게 부담을 준 것이다.

말러가 「대지의 노래」를 완성한 것은 1908년 여름이었다. 그 전해인 1907년에 말러는 사랑하는 딸 알마를 잃고 상당한 충격을 받은 바 있다. 그의 마음 속에 죽음이란 것이 구체적으로 떠오른 것은 이때부터였다. 극도로 쇠잔해가는 건강과 정신력의 감퇴를 바라보면서 「대지의 노래」를 썼던 말러는 이승에 대한 강렬한 애착과 함께 피안에 대한 끝없는 동경도 함께 그리면서 그의 9번 교향곡에 착수하게 된 것이다. 1909년 여름, 「대지의 노래」가 완성된 꼭 1년 후에 9번 교향곡을 작곡하기 시작한 말러는 이 곡을 써나갈 즈음에 뉴욕 필하모닉으로부터 상임지휘자의 자리에 초대되어 결국 악보 보따리를 싸든 채 대서양을 건너야 했다. 1909년 10월부터 뉴욕필의 상임지휘자로 활동하면서도 그의 마음 속에는 D장조 교향곡에 대한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그렇게 해서 교향곡 9번은 빈에서 잉태되어 신천지 미국에서 완성을 보게 되었다.

말러는 그의 마지막 곡이 된 9번을 통하여 극도로 긴장된 침통함과 비애감을 속속들이 풀어헤치고 있다. 생명의 소진함을 피부로 느끼면서 다듬어 나간 하나하나의 음표에서 말러는 이승에 대한 확인을 해나가면서도 끝내 보장받지 못한 피안의 세계로 달려나가는 자신을 의식한 것이다. 이 곡에 대해서 빌헬름 멩겔베르크는 말러의 「대지의 노래」가 친구(혹은 인류)에 대한 이별이라면, 9번 교향곡은 사랑한 모든 이에 대한, 세계에 대한, 그의 예술, 삶, 음악에 대한 이별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이별에 대한 말러의 감정은 4악장을 통해 극적으로 나타난다. 4악장의 중간에는 웅변적인 클라이맥스가 놓여있고 그 후에는 점차 규모가 줄어들며 실내악 형태의 현악 합주로만 끝난다. 이 초월적이고 명상적인 마지막 부분에 대해 마이클 틸슨 토마스는 ‘세상 구경을 다한 말러가 내려와 날개를 접는 것’이라는 묘사를 하기도 했다. 또한 이 부분에서 어떤 학자들은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의 네 번째 곡이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제 1바이올린은 다음 가사 부분을 조용히 노래한다. ‘저 위에서는 좋은 날이 되겠지.’

말러는 알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미지수와 같은 인물이다. 그러나 인류에게 많은 메시지를 전달한 말러는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받고 추앙받는 인물이 되었다. 그러한 그가 마지막으로 작곡한 교향곡 10번은 미완성인 상태로 남아 있다. 그가 남긴 곡 스케치 속에는 그가 알마로 인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고 있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말러에게 있어 알마는 정신적 위안의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알마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과 함께 말러의 상태를 심하게 뒤흔들어 놓았다. 곡 자체가 물론 어둡고 냉소적이며 고별에 관한 것이지만 곡의 스케치에 놓인 낙서들이 그의 심한 갈등을 잘 설명한다. 예를 들어 4악장의 끝 부분에는 ‘당신(아마도 알마)만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거요, 아! 아! 아! 나의 음악이여, 안녕! 안녕! 안녕!’이라고 적혀 있으며, 피날레의 끝 부분에는 ‘당신을 위해 살고, 당신을 위해 죽으리, 알름쉬(알마의 애칭)!’이라고 안쓰러울 정도로 괴로워하는 그의 감정이 담긴 메모가 있다.

알마만을 위해 혼신을 다해 써내려간 교향곡 10번, 그러나 곡은 미완성으로 남았고, 여전히 우리 인류에게 미지수로 남아 있다. 그러나 아름다운 아다지오 악장은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 어두움과 두려움의 터널을 지나 말러가 얻고자 했던 평안함을 관객들에게 선사할 것이다. 

 

작품의 구성

후기 혹은 말기 작품의 개성과 특징이 말러만큼 뚜렷하게 발견되는 작곡가는 베토벤 이후 거의 없다는 것을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고 있다. '대지의 노래'를 시작으로 이어지는 교향곡 9번과 교향곡 10번은 말러가 남겼던 예전의 교향곡과는 그 음악 어법에서 많은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슈베르트(그의 짧은 생애를 말년으로 구분한다는 것도 우습지만) 정도를 유일하게 이 두 작곡가와 비교할 수 있을까 교향곡보다는 현악 사중주곡과 피아노 소나타에서 강하게 발견되는 베토벤 후기 작품들의 기묘한 화성이(아마도 귀가 너무 오랫동안 먹어서 기본적인 화성 체계가 조금씩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생각도 되지만) 독일의 전통적인 형식의 틀에서 많이 벗어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듯이, 말러의 경우 내용 면에서는 열정적이고 질풍노도 적이었던 전의 작품에 비해 휙 작품들은 훨씬 체념적이고 초월적이며, 기교 면에서는 쇤베르크 등이 제2비인 악파가 시작한 현대 음악 어법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다.

곡의 배치에 있어 9번 교향곡의 특이한 점은 느린 악장으로 시작되고 느린 악장으로 끝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느린 악장이 마지막에 놓인 3번 교향곡을 작곡할 무렵 이미 그는 알레그로에 비해 아다지오를 더 고급스러운 형태로 간주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곡은 시작도 안단테라는 느린 악장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이런 점에서 굳이 카를 H. 뵈르너 같은 학자들의 지적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쉽게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비창'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두 곡은 악장의 순서뿐만 아니라 그 내용에서도 묘하게 닮아 있는데, 이 곡에 대해 오히려 말러는 1901년 경 "수준이 얕고 외향적이며, 형편없이 단조롭다."고 평가한 적이 있다.

악장의 배치뿐만 아니라 역시 지적할 만한 점은 곡의 조성이다. 흔히 D 장조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D 장조의 조성을 가진 악장은 1악장 밖에 없고, C 장조와 a 단조인 중간 악장을 거쳐, 마지막 악장은 D 플랫 장조로 시작된다. 말하자면 중심 조성이 없다고도 할 수 있는데, 이런 점에서 전통적인 교향곡의 틀은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 그렇다고 각 악장들이 완전히 서로 독립된 것은 아니다. 첫 악장과 마지막 악장이 리듬 동기로 연결되어 잇고, 3악장과 마지막 악장은 서로 같은 삽입구를 공유하고 있다.

 

1악장. 안단테 코모도 Andante comodo

필자로서는 말러의 9번 교향곡이 가지고 있는 많은 점들 중에서 가장 지적하고 싶은 것이 바로 곡을 여는 동기이다. 간단히 9번 교향곡은 '대지의 노래'가 끝난 바로 그 곳에서 출발하고 있다. '대지의 노래'를 끝맺는 바로 그 동기, 봄의 아지랑이와도 같은 나른함과 절의 풍경(風磬)과도 같은 내세적인 느낌을 주는 첼레스타의 살랑거림을 배경으로 위로하듯이 이어지는 그 동기, 해결음이 없는 두 음으로 이어지는 바로 그 'ewig' 동기는, 비올라의 부드러운 웅얼거림을 배경으로 제2바이올린에서 등장하는, 우아한 슬픔을 가진 9번 교향곡의 첫 주제와 완전히 동일한 것이다. 이 'ewig' 동기와 함께, 곡을 여는 첼로의 붙점 리듬(윌리암 리터가 불규칙한 심장 박동이라고 표현한), 비올라의 웅얼거림이라고 표현한 '상승 단 3도-하강 장 2도' 동기는 1악장 전체를 지배한다. 왜 말러가 '대지의 노래'를 마친 바로 그 곳에서 교향곡 9번을 시작하고 있는지에 대해 작곡가 스스로의 설명을 찾을 수 없는 지금 그 이유를 제시한다고 해도 단지 추측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단지 이 동기가 나타내는 것이 이별이라는 추측은 아주 설득력 없는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못갖춤음의 동기는 '대지의 노래'에서 더 거슬러 올라가, 말러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6번 op. 81a '이별'이 1악장 '이별'에서 가져온 것이기 때문이다.

구조는 말러식 소나타 형식이다. 두 주제가 제시부를 구성하고 제2주제는 같은 으뜸을 단조로 등장한다. 말러는 이 두 주제와 함께 제시부의 종결부도 발전부에서 다루고 있는데(이는 브람스가 자주 사용한 수법이기도 하다), 사실 종결 주제는 부분적으로 제2주제와 같은 소재를 이용한 것이다. 말러의 교향곡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장례 행진은 발전부의 마지막에서 그 모습을 나타낸다. 여기서는 팀파니가 '3도' 동기를 변형해 느린 장례 행진 분위기를 잡아가고 이를 배경으로 트럼펫의 기상나팔과 벨의 '3도' 동기가 울리는 듬 말러 특유의 혼란스러운 정신 상태를 맛볼 수 잇다. 제현부는 '죽음의 상징'이라고 불리는 예의 붙점 리듬으로 시작하며 코다를 지나, 말러의 후기 작품들의 특징 중 하나인 '모렌도(점점 여리게)'로 끝난다.

 

2악장. 편안한 렌틀러 템포로, 조금 서두르고 매우 거칠게 Im Tempo eines gemächlichen Ländlers. Etwas täppisch und sehr derb

아도르노, 멩겔베르크 등을 포함해 여러 학자들이 이 악장을 일컬어 '죽음의 무도'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 곡은 크게 세 가지 무곡 주제로 이루어졌는데, 첫 부분의 편안한 렌틀러(템포 Ⅰ), 거친 왈츠(템포 Ⅱ), 그리고 느린 렌틀러(템포 Ⅲ)이다. 이 세 무곡은 번갈아 가며 등장하고, 중간에는 왈츠 주제에 두 렌틀러 주제가 조금씩 섞여 나오기도 한다. 전체를 보면 '서투르고 거칠게'라는 지시로 시작되어 여러 무곡들을 거친 후에 매우 세심한 피아니시모로 종결되기 때문에, 브루노 발터는 이를 일컬어 '무도는 끝났다('잔치는 끝났다'이 말러 식?)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3악장. 론도-블를레스크(알레그로 아사이, 매우 완고하게) Rondo - Burleske. Allegro assai. Sehr tratzig

부를레스크는 '농담'을 일컫는 말이다. 장난스러운 음악을 얘기하지만 이 음악이 장르화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구체적인 형식 같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니다. R. 슈트라우스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부를레스크'가 가장 유명한 곡 정도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말러의 부를레스크는 농담으로 들리기에는 너무 거칠고 그야말로 '완고'하며 무시무시하다. 또한 론도라고 붙어 있는 만큼 부를레스크 주제는 대주제 사이에 계속 등장한다. 이와 더불어 중간에서 만나는 것은 세 번의 푸가토이다. 이들은 독립된 푸가 주제를 가진 것은 아니고 부를레스크 주제를 이용해 구성한 것이다. 대위 주제와 푸가 주제가 동시에 등장하다 보니 아마 이 부분만 듣는다면 무엇이 푸가 주제인지 혼동되어 3주제 푸가로 간주할 수도 잇을 것이다. 정교하지만 복잡한 전개 방식을 가지고 있고, 특히 주제가 퉁명스러운 점 때문에 R. 슈트라우스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 등장하는 푸가가 연상되기도 한다. 정신 없이 치고 빠지는 이 악장의 중간에는 4악장을 예고하는 고요한 부분이 놓여 있어 잠시 숨을 돌릴 수도 있다.

 

4악장. 아다지오 Adagio. Sehr langsam und naco zurückhaltend

웅변적인 이별을 다루고 잇는 이 악장은 대조된 두 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이 두 주제가 소나타 형식처럼 발전하고 재현된다기보다는 모습을 조금씩 바꾸면서 번갈아 등장한다고 보는 것이 더 옳은 일일 듯 한데, 이런 형식은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두 주제의 변주 형태로 쓰여진 4변 교향곡과 6번 교향곡의 느린 악장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중간에는 웅변적인 클라이맥스가 놓여있고 그 후에는 점차 규모가 줄어들며 실내악 형태의 현악 합주로만 끝난다. 역시 모랜도이다. 이 초월적이고 명상적인 마지막 부분에 대해 마이클 틸슨 토마스는 '세상 구경을 다한 말러가 내려와 날개를 접는 것'이라는 묘사를 하기도 했다. 또한 이 부분에서 예민한 몇 학자들은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의 네 번째 곡이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제1바이올린은 다음 가사 부분을 조용히 노래한다.

출처 : 선한 사마리이인
글쓴이 : 쇼므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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