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2. 12. 05:32ㆍ듣고싶은 곡
자유와 민권을 노래한 프로테스탄트 포크의 여왕 - 존 바에즈(Joan Baez)
조안 산도스 바에즈
(Joan Chandos Baez)
Dona Dona - Joan Baez
On a wagon bound for market 시장에 갈 사륜마차 위에
There's a calf with a moanful eye. 슬픈 눈의 한 마리의 송아지가 있네.
High above him there's a swallow 송아지 머리 위의 저 높은 곳에는
Winging swiftly through the sky. 하늘을 재빨리 나는 제비가 있고.
How the winds are laughing 바람들이 얼마나 웃고 있었는지
They laughs with all their might. 바람들은 있는 힘껏 웃었지.
Laugh and laugh the whole day through 한낮동안 웃고 또 웃고
And half the summer's night. 그리고 여름밤의 반을 웃었다네.
Dona Dona Dona Donna 도나 도나 도나 도나
Dona Dona Dona Don. 도나 도나 도나 돈.
“Stop complaining”said the farmer“ 불평하지 말아라”라고 농부는 말했네.
“Who told you a calf to be“ 누가 너더러 송아지가 되라고 하더냐?
Why don't you have wings to fly with 왜 너는 날아갈 날개가 없니?
Like the swallow so proud and free?” 대단히 자랑스럽고 자유로운 제비처럼 말이다."
Calves are easily bound and slaughtered 송아지들은 쉽게 묶여 도살되지
Never knowing the reason why 왜 그래야 하는지 그 이유는 전혀 모르면서.
But whoever treasures freedom 하지만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어느 누구도
Like the swallow has learn to fly. 제비들처럼 나는 것을 배워 왔다네.
And half the summer's night. 그리고 여름밤의 반을 웃었다네.
Dona Dona Dona Dona 도나 도나 도나 도나
Dona Dona Dona Don. 도나 도나 도나 돈.
이 노래는 원래 Aaron Zeltlin(1899~1974)이 1940년 유태인 언어인 이디시어(Yiddish)로 쓴 것인데, 이 노래는 조국없이 떠돌아 다니며 핍박 받던 유태인의 불행한 삶을 자조적으로 노래했다고 해석하고 있다.
['Dona'의 의미에 대해]
본인(중년의 미학)도 'Dana'의 의미를 알 수 없어, 오랜 시간에 걸쳐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으나 어느 곳에도 이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 그나마 음악 전문 사이트에서 약간의 언급이 있기는 한데, 그곳에서도 그냥 단순한 '후렴'에 불과하고 그 뜻은 알 수 없다고 하는 정도의 설명 뿐이었다.
그러나 본인은 그 뜻을 밝혀보고 싶었다. 우선 라틴어 사전을 보았으나 'dona'란 단어는 없었다. 그러나 어근이 될 만한 단어에서 'donatio'(도나씨오)를 발견했다. 이는 선물, 선사, 헌납, 기부 등의 뜻이다. 한편 본인이 오래 전 성가대에서 원어(라틴어) 성가를 부를 때, "도나 노비스 빠쩸"이라는 소절이 떠올랐다. 그기에 도나가 나오기 때문이다. 정확한 스펠링과 각 단어의 뜻은 잘 모르나, 추정하건대, 노비스는 'nobis'로서 '우리에게' 또는 '우리의'란 뜻이고, 빠쩸은 아마도 평화란 뜻인 'pax'가 격변화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소절은 대충 "우리에게 평화를 주는 선물" 내지는 '우리에게 평화를 주기 위해 희생제물이 되신 (주님)"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선물, 선사, 기부 등은 희생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니 이러한 해석은 가능하리라고 본다.
그렇다면, 이 노래에서 'Dona'는 '희생물' 또는 '희생제물'이란 의미로 새겨도 무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특히 이 노래는 '자유'를 주제로 하여 <시장에 팔려나가는 송아지>를 <자유를 위해 희생되는 사람(민초)>을 상징화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본인의 해석이 가능하다고 본다. 아울러 이 노래는 우리나라 군사독재 시대 금지곡이 되기도 했다는 점도 참고할 만하다. 아무튼 위와 같은 설명과 해석은 본인(중년의 미학)의 독자적인 것이므로 참고에 그쳤으면 한다.
<존 바에즈>는 1941년 1월 9일 미국 뉴욕의 스태이튼 아일랜드(Staten Island)에서 멕시코 출신의 알베르트 비니치오 바에즈(Albert Vinicio Baez)와 스코틀랜드 출신의 존 브리지 바에즈(Joan Bridge Baez)의 세 딸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핵무기 제조에 반대하는 물리학자였으며 어머니는 희곡작가였다. 나중에 바에즈가 인종차별을 반대하고 반전평화운동가로서 활동하게 된 데에는 반핵물리학자였던 멕시코계 아버지를 둔 가정적 환경이 컸다고 할 수 있다.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캘리포니아(California)에서 고등학교(Palo Alto High School)를 다닌 바에즈는 음악에 심취하여 졸업 무렵에는 자신의 노래를 녹음하여 음반회사에 보내기도 하였다. 1958년 아버지의 새로운 직장 때문에 매사추세츠로 이주한 그녀는 보스턴 대학교(Boston University)에 진학하지만 직업적인 가수활동을 하기 위하여 곧 중퇴하였다. 1959년 캠브리지(Cambridge)의 포크음악클럽인 클럽 47(Club 47)에서 정식으로 노래하기 시작한 바에즈는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The Newport Folk Festival)을 통하여 대중에게 알려지게 되었으며 1960년 포크 전문 레이블인 뱅가드(Vanguard Recording Society)와 장기계약을 맺고 음반들을 발매하였다.
바에즈는 1961년 뉴욕에서 밥 딜런을 만나 함께 전국순회공연을 하며 흑인들의 인권 향상을 위한 인종차별 철폐운동에 앞장서고 월남 반전평화운동에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국내외에서 펼친 음악활동만큼 반전운동도 맹렬했던 그녀는 직접 반전시위에 가담하여 체포당하기도 하였다. 1968년 3월 26일 반전운동가인 데이비드 해리스(David Harris)와 결혼한 바에즈는 해리스가 비폭력주의를 실천하기 위해 양심적 병역거부로 투옥되자 우드스탁 축제(The Woodstock Festival)에 참여하는 등 반전운동에 더욱 열중하게 되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나가면서 바에즈의 활동도 변화되어 전통 포크의 모습에서 새로운 음악스타일로 옮겨가게 되었다. 그녀의 대표곡이자 최대 명곡인<Diamond & Rust>는 새로운 음반사 A&M를 통하여 1975년 4월에 발매되었다. 전문적인 음악교육을 받지 못하고, 대학마저 중퇴했지만 실력으로 평생 큰 업적을 이루었다. 바에즈는 8장의 골드앨범과 1장의 골드싱글을 기록하였다. 그래미상 후보에 6번 선정되었으며 2007년 그래미 평생공로상(Lifetime Achievement Award)을 수상하였다. 인권과 평화운동의 공로로 2개 대학교로부터 명예박사학위를 수여 받았고 2개 주로부터 '존 바에즈의 날(Joan Baez Day)'을 지정받는 명예를 얻었다. <출처: 웹문서>
Compiled by <http://blog.daum.net/seonom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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