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2. 31. 10:55ㆍ듣고싶은 곡
Love Is Blue (원곡명: L'amour est bleu 우울한 사랑)
<Love Is Blue>는 폴 모리아((Paul Mauriat, 1925 - 2006, 프랑스)를 성공가도로 끌어내준 곡으로 그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다. 이 곡은 원래 '앙드레 포프'의 곡으로 1966년 프랑스 출신의 여성 팝 가수 클로딘 롱제(Claudine Georgette Longet)가 불렀던 곡인데 1967년 제12회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룩셈부르크 대표로 참가한 여가수 비키 레안드로스(Vicky Leandros)가 <L'amour est bleu>라는 제목으로 프랑스어로 불러 4위로 입상한 곡이다. 폴 모리아는 이를 1968년 자신의 스타일로 편곡, 연주하여 취입하였다. 당시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이 짧고 간단한 노래가 바로 1968년 빌보드 차트 1위를 5주 동안이나 지켜, 세계적인 연주곡이 되었던 것이다. 이 <Love is blue>로 인해 그는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한 유일무이한 프랑스 아티스트가 되었다. 또한 '비키 레안드로스'라는 어린(18세) 가수도 세계적인 인물로 알려지게 되었다(참조: 비키 레안드로스의 칸초네 '카사비앙카' 번안곡 <White House> → http://blog.daum.net/seonomusa/2740).
이 곡은 여러 가수들이 리메이크하여 불렀는데 그 중 실비 바르땅(Sylvie Vartan, 1944 ~ , 불가리아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애국적 샹송가수)의 노래가 유명하다.
Love Is Blue - 실비 바르땅(Sylvie Vartan)
Butterfly (버터플라이)
다니엘 제라르(Danyel Gerard, 1939 ~ 프랑스 팝 싱어 겸 작곡가)의 1971년 발표곡
다니엘 제라르의 노래
Isadora (이사도라)
이 곡은, 현대무용의 전설적인 개척자 '이사도라 던컨'(Isadora Duscan, 1878 - 1927, 미국) 이라는 실제인물을 묘사했다. 원곡은 '앙드레 포프'의 작품으로 1967년 제12회 유로비전 송 컨테스트(Eurovision Song Contest)에 룩셈부르크(Luxembourg) 대표로 출전한 '비키 레안드로스'가 불렀는데, 다음해 1968년 Paul Mauriat 악단이 발표하여 Billboard single chart에 5주간 정상에 오르는 등 사상 최대의 인기를 모은 곡이며, 1968년 영화 <맨발의 이사도라>에 OST로 삽입된 곡이다. 이사도라 던컨의 춤은 고대 그리스 무용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맨발로 무대에 선 것으로 유명하다.
밤하늘의 트럼펫
영화 '지상에서 영원으로(From Here To Eternity, 1953)'에서 몽고메리 크리프트(Montgomery Clift)가 전우 프랭크 시내트라(Frank Sinatra)가 독일군 총탄에 맞고 전사하자 취침나팔이 끝나고 연병장에서 적막한 밤하늘을 향해 눈물 흘리며 이 곡 밤하늘의 트럼펫(ll Silenzio)을 연주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이 곡은 니니 로소(Nini Rosso, 1926 - 1994. 이탈리아 트럼펫 연주가)의 트럼펫 연주로 유명하다.
별이 빛나는 밤에(Merci cheri) 별이 빛나는 밤에(Merci cheri 메르시 쉐리)는 프랑크 푸르셀(Frank Pourcel)의 1968년 발표곡
폴 모리아(Paul Mauriat, 1925 ~ 2006)는 프랑스의 작곡가, 편곡가, 지휘자, 피아니스트, 쳄발로 연주자이다. 이지 리스닝(무드음악)계의 1인자로 유명하다. 프랑스 남부의 마르세이유에서 태어나 9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1941년에 마르세이유 국립 음악원을 졸업했다. 이후 아마추어 재즈 밴드를 결성하거나 스튜디오 디렉터, 오케스트라 지휘 등의 활동을 하다가 1965년에 ‘폴 모리아 그랜드 오케스트라’를 결성했다. 1968년 이어 앙드레 포프의 곡을 편곡해 출시한〈Love Is Blue>(L'Amour Est Bleu)는 5주간 미국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하였고,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다(5백여만 장). 그 외에도 El Bimbo, Toccata, Penelope, Nocturne 등의 히트곡을 남겼다.
대한민국과 일본, 중화민국, 홍콩,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으며, 1969년의 첫 방일과 1975년의 첫 방한 이래 도합 1,200회 이상 공연하기도 했다. ‘아리랑’과 ‘돌아와요 부산항에(Please return to Pusan port)'를 경음악으로 편곡했으며, 1976년에 프랑스에 아리랑을 소개하여 이후에 유럽에 아리랑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1970년대를 전후로 라디오 시그널 음악으로 폴 모리아 악단의 곡이 많이 쓰였다.
폴 모리아는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살려 대규모의 현을 사용하는 한편 효과적으로 쳄발로를 사용하여 완전히 이색적인 사운드를 창조하여 새 시대의 무드음악(Easy Listening)의 개척자라고도 불리어졌다. 그의 음악세계의 또 하나의 특징은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그 나라의 음악을 자신만의 작곡과 편곡으로 오케스트라와 더불어 수많은 레퍼토리를 소화해내며 사랑을 받아왔다. 그 중 브라질의 음악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아 수차례나 브라질을 방문하였고, 남미 음악을 유럽에 전파하였다. 이러한 결과로 발표된 곡이 유명한 '에게해의 진주(Penelope)', '엘 빔보(El Bimbo:올리브의 목걸이)', '시바의 여왕(La Reine De Saba)' 등으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1975년 12월 23일 처음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한 후 그 동안 4번이나 내한공연을 가졌고, 우리의 음악도 여러 곡 편곡하여 발표한 바가 있다. 1998년의 일본 오사카 공연을 끝으로 연주 활동은 은퇴했지만, 이후에도 폴 모리아는 파리에서 은둔하며 공연 총 감독을 맡았고 그의 악단은 대한민국, 일본, 중국, 러시아에서 연주 활동을 계속했으며, Gilles Gambus가 2004년까지 지휘했고 2005년부터는 Jean-Jacques Justafre가 지휘했다. 2006년에도 그의 오케스트라가 한국과 일본에서 공연을 할 계획이었으나 그의 사망으로 인해 무산되었다. 1997년 프랑스 문화부로부터 `예술문화 훈장'을 받았다.
<자료 출처 : 위키 및 여럿 웹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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