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바르톡 / 현악4중주 1번

2012. 12. 4. 01:20듣고싶은 곡


String Quartet No.1 in A major, Op.7/Sz.40

 

바르톡 / 현악4중주 1번

 

Béla Bartók, [1881~1945]

 

collect & bring write-shomron

 


1악장 (Lento)
Emerson String Quartet

 


2악장 (Poco a poco accelerando all'allegretto)
Emerson String Quartet

 


3악장 (Introduzione Allegro - Allegro vivace)
Emerson String Quartet

 

 

현악4중주 제1번, Op.7

이 작품은 1908년 부다페스트에서 작곡되기 시작하여, 1909년 1월에 완성되었다. 이것은 1910년 3월 19일, 그의 작품만으로 공연된 부디페스트의 연주회에서 발트바우어-케르페이 4중주단에 의해 초연되었다. 코다이의 작품만으로 공연된 연주회도 이보다 이틀 전에 잇었다. 그래서 이 두 개의 음악적 사건을 두고 사람들은 "근대 헝가리음악의 탄생일"이라고 했다.

이 곡은 매우 특이한 3악장 형식을 갖고 있다. 음악적 언어는 후기 바그너와 초기 쇤베르그의 독일 음악의 세계에 뿌리를 둔 자유로운 반음계 주의에서, 동유럽 민속음악의 매우 특이하고 훨씬 더 직접적인 언어로의 이동을 보여준다. 첫 악장은 느린 악장으로 바이올린의 조용하면서 표현적인 캐논으로 시작하여 점점 비올라와 첼로가 가세한다.

가운데 부분이 지나가고 나면 캐논이 높은 음역에서 다시 나온다. 1악장은 어중간하게 끝나고 짧은 연결구를 거쳐 알레그레토 악장으로 넘어간다. 2악장은 빠른 왈츠의 성격을 갖고 있다. 그러나 기대하는 스케르쪼-트리오 형식이 아니라 자유로운 소나타 형식으로 되어있다. 제1주제는 2악장의 주요 아이디어의 하나이고, 발전부는 같은 아이디어가 우아하게로 바뀌어 푸가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작품의 전체 형식은 음악외적 의미를 갖는다. 바르톡은 첫악장을 "나의 장송곡"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아마 바이올니스트였던 쉬타피 가이어앙과의 사랑이 끝나버린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작품 첫 마디는 그녀와 연과되는 다른 작품들에도 들어있는 네 음의 동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그의 친구 코다이는 이 곡을 "삶으로의 복귀"라고 불렀다.

 

바르톡과 현악 4중주

벨라 바르톡은 그의 작곡가로서의 생애에 현악4중주라는 매체에 매료되어 있었다. 새로운 세기로 들어서기 직전인 1898년, 즉 그가 부다페스트 음악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하기 직전에 그가 작곡했던 마지막 작품 중 하나도 현악4중주였다. 이 곡에 앞서 1896년 이후 두 개의 현악4중주를 더 썼었으나 지금은 소실되고 없다. 거의 50년 후, 그의 죽음으로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제작을 의뢰하여 연주하는 계획'의 일환으로 그가 쓰고자 했던 것도 현악4중주였다.

그가 작곡하여 출판한 6개의 현악4중주는 그의 제자 마티야스 지버가 썼듯이 "그의 전체 작품을 이루는 뼈대"와도 같은 것이다. 또한 현악4중주들의 공연 역사는 바르톡의 음악에 대한 관심이 그의 조국인 헝가리에서 다른 유럽 지역과 미국으로까지 번져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바르톡의 음악적 발전상을 그대로 담고 있다.

제1번과 제2번은 후기 낭만주의에서 시작하여 드뷔시의 영향을 받고 무엇보다도 헝가리 민속음악에 자극받은 그의 독특한 음악적 어휘가 형성되고 세련되어져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제3과 제4번은 그의 중반기의 특징인 표현의 극단성과 집중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 2개는 더 서정적이고 "고전적"인 경향으로 회귀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바르톡이 현악4중주라는 매체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것의 독특한 효과를 표현했다는 점은 다른 어떤 점보다도 놀라운 것인데, 그 이유는 그가 피아니스트였지 현악기 연주자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젤리 다라리나 졸탄 페클리를 포함하여, 자신과 같이 연주했던 여러 명의 바이올리니스트들로부터 많은 충고를 받을 수 있었다. 또한 그는 발트바우어-케르페이 현악4중주단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들은 그의 제1번 현악4중주의 초연을 위해 결성된 연주단체였고 또한 그의 제2, 3, 4번 현악4중주를 초연하였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 그는 연주자들이 개별 파트너에서나 혹은 전체 앙상블을 만들어 낼 때 당면할 수 있는 어려움의 정도와 그것을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생생한 악기의 음색에 대한 뛰어난 귀를 갖고 있었다. 일련의 현악4중주를 통해, 2중음, 3중음, 심지어는 4중음과 줄을 넘나드는 빠른 악절들을 자주 사용했고 항상 성공적이었다.

음색의 다양성은 약음기를 사용하거나 현을 여태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는 지시어들(Sul ponticello-브릿지 가까이에서 연주하는 것, Sulla tastiera-지판 가까이에서 연주하는것)과, 활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사용하는 지시어들(a punta d'arco, au talon), 그리고 활등으로 연주하는 지시어(col legno)등으로 얻게 된다.

피치카토는 이미 하나의 효과가 아니라 전곡을 통해 나타나고 있으며, 이런 것에는 아르페지오로 연주되는 화음이나 "바르톡 피치카토" 즉, 현이 튕겨서 지판에 맞고 튀어나올 정도로 세게 잡아 당겨서 내는 피치카토도 포함된다. 지속음들은 트릴이나, 트레몰로 혹은 '비브라토 없이', '더욱 더 비브라토로' 등의 지시어들로 장식된다.

보통의 음고는 때때로 그라싼도나, 미분음으로 모호하게 되기도 한다. 이러한 효과들을 결합하여 사용하는 것은 이전시기의 어떤 현악사 중주에서도 볼 수 없었던 타악기적 음향을 만들어 낸다. 그렇지만 음색적 사고는 바르톡의 기악서법을 넘어 그의 음악적 어휘의 요소로까지 확대된다. 불협화음은 오로지 음색이라는 이유만으로, 화성적 혹은 대위법적 논리에서가 아니라, 타악기적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조성은 초기의 사주중에서 조차 큰 부분을 형성시켜 주는 힘이 되고 있지 않다. 그러나 특정한 정점을 표시하거나 부분이나 악장의 결말을 짓는 부분에서 나타난다. 어떤 경우에도 바르톡이 사용하는 음계는 조성에 의지하는 전통적인 장단조로 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오히려 헝가리나 발칸 반도, 북아프리카와 같은 지역의 민속 음악에서 그가 발견한 바 있는 그런 비관습적 선법으로 되어 있다. 또한 바르톡의 리듬도 이러한 민속음악에서 나온 것이 많다.

그가 자주 사용하는 선율음형은 헝가리 민속음악에서 볼 수 있는 강한 박자의 액센트를 갖는다(이러한 헝가리 민속음악의 특징은 헝가리 말이 항상 첫 음절에 액센트를 갖고 있는 것이 반영된 것이다). 그리고 그는 불가리아 리듬인 불규칙한 부가리듬을 자주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바르톡이 이 현악4중주에서 민속음악을 그대로 인용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민속노래를 직접적으로 모방할 때조차, 혹은 전통적 집시 음악의 선율을 모방할 때조차, 그것은 항상 특별한 표현적 혹은 은유적인 목적을 위해서였다. 대체로 민속 음악적 요소는 그의 독특한 음악적 어휘에 완전히 흡수되어졌다.

현악4중주의 짜임새는 동기의 발전이 내적으로 깊어지고 서서히 퍼져나가는 방식에 의해 이루어져 있다. 작은 동기는 복잡한 대위법적 그물 속에서 단순한 혹은 자유로운 모방으로 다루어져 있다-이것은 하이든 이후 줄곧 현악4중주들에서 볼 수 있는 특징적 진행이며 이 매체가 갖고 있는 '동질의 소리'라는 특성에 잘 부합되는 것이다. 그러나 바르톡은 이러한 현악4중주의 일반적 특성을 보다 밀도 있고 보다 복잡한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악장 내에서 혹은 악장과 악장 사이에 동기는 다른 아이디어로 축약되거나 확장 혹은 변화될 수 있다-이러한 방식은 프랑스의 '순환적 형식'이나 쇤베르그 악파의 음렬주의와 관계되어 있다기 보다는 바르톡이나 바르톡 이전의 위대한 헝가리 작곡가인 리스트, 혹은 바그너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로 이어지는 작곡가들이 사용했던 "테마의 변형"이라는 방법과 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바르톡 현악4중주의 대부분의 악장들은 전통적인 형식구조-보통 소나타 형식-로 되어 있지 않다. 조성적 반복없이, 문자 그대로의 반복 대신 끊임없이 동기를 발전시키고(바르톡은 "나는 음악적 사고가 변함없이 반복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형식은 다른 방식으로 분명해진다. 예를 들면 재현부의 경우 이것은 가장 쉽게 인지되는데, 그 이유는 초기의 템포와 텍스쳐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다른 구조적 아이디어들이 각 악장마다의 형식에서 나타난다. 예를 들면 최근의 어떤 분석가들이 밝혀낸 바 같이, 파보나치 수열이나 황금분할에 기초한 비례라든가, 보다 청각적인 것으로는 대칭적 구조에 대한 선호-그 결과 반원같은 형식적 구조가 이루어진다-등이 그것이다. 반원모양의 형식은 이 현악4중주의 전 구조를 가장 많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을 사용할 때도 그는 정확하게 똑같이 사용하지는 않았다.

위에서 많이 언급했다시피, 바르톡의 4중주는 그것을 처음 듣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현대적이고 어려운 것으로 여겨지겠지만 그렇다할지라도 처음 들을 때도 작품에서 느껴지는 어려움이 베토벤의 후의 현악4중주들이 그렇듯이 심각함과 깊이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러나 청중들은 바르톡의 음악에 점점 친숙해지고 있지만 역사가들은 근대음악의 주요흐름으로부터 이탈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인물로 그를 취급해 왔다. 그리고 민속음악에 영감을 받은 다른 국민악파와 일괄해서 다루어왔다.

그러나 그의 작곡방식의 힘과 세밀함에 대한 인식이 늘어가고, 선법을 사용하는 작곡방식에 대한 관심(메시앙의 음악에서처럼)과 민속 음악의 요소를 흡수하는데 대한 관심(베리오의 주요 작품들 중 몇몇에서 볼 수 있듯이)이 증가해감에 따라 그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도 점점 증가해지고 있다.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바르톡의 음악은 동유럽 작곡가들의 작품에 특히 강한 영향을 주었다.

매우 빠른 속도에서 서로 교차되는 대위법적 텍스쳐는 마치 소리 구름 같은 것을 형성시키는데, 이러한 효과는 같은 헝가리 작곡가인 게오르그 리게티의"초-다성음악"의 확실한 모델이 되었다. 그리고 음악적 구조의 요소들 중의 하나로 짜임새를 사용하는 것은 리게티와 비톨트 루토스와브스키에게 영향을 주었다. 이제 바르톡의 음악이 갖는 위치와 중요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6개의현악4중주는 다른 작곡가들, 특히 쇤베르그, 힌데미트, 쇼스타코비치나 카터의 현악4중주들과 더불어, 이미 만들어진 많은 현악4중주 레파토라에 덧붙여지는 이 세기의 가장 중요한 현악4중주의 하나로 인식되어지고 있다.



출처 : 클래시칼 아트 뮤직
글쓴이 : 쇼므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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