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Pastorale in A Major, Andante Sosutenutto assai - Andantino
- 전원곡(목가, Pastorale) : 제 2 막의 개막전 음악이며 바카레스 호반 잠면의 혼성 합창등을 이어 엮은 것이다. 곡은 세 부분으로 되어있다. 제 1부는 안단테 소수테누토 아싸이, A 장조, 4분의4박자, 먼저 장중하고 힘찬 선율로 시작된다. 중간부는 안단티노, 4분의3박자이며 프로방스 큰 북을 추가한 이 지방 특유의 리듬을 타고 풀룻과 클라리넷이 유니즌으로 경쾌한 선율을 연주한다. 끝은 서두 부분의 되풀이이다.
제3부는 제1부의 규모를 축소시킨 재현부이다. 본래의 희극에서는 제1부 음악이 제2막 개막 전에 연주된다. 비베트와 아를의 사이에서 고민하는 프레디, 그러나 그는 마침내 비베트와 결혼할 것을 결심하게 된다.
2. Intermezzo in C Major, Andante Moderato con Moto
- 간주곡(Intermezzo) : 제 2 막 제 1 장과 제 2 장 사이에 연주하는 곡이다. 제 2 조곡에서 비제의 원곡을 그대로 쓰고 있는 것은 이 곡 뿐이다. 안단테 모데라토 콘 모토, C 장조, 4분의4박자, 사색하는 듯한 엄숙한 느낌의 가락이 gksehdf안 흐르고 난 후에 알레그로 모데라토의 중간부로 들어간다. 색스폰으로 연주하는 기도와도 같은 무게 있는 선율이다. 훗날 라틴어 가사를 붙여 '신의 어린양' 이라는 종교곡을 만들었다.
희극에서는 제2막의 1장과 2장 사이에 나오는 곡으로 애수를 띤 주선율이 색소폰에 의해 명상적으로 연주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잊어야 한다는 것이 못내 가슴 아프다.
3. Menuet in E Flat Major , Andantino llegretto
- 메뉴엣 : 오페라'아름다운 빼르뜨의 딸' 의 제 3 막에서 전용한 곡이며 안단티노 알레그레또, E 플랫 장조, 4분의 3 박자. 하프의 반주를 타고 풀룻 독주를 시작한다. 차츰 다른 악기를 추가하며 진행 하다가 이윽고 다시 풀룻과 하프만으로 조용히 끝난다. 풀룻의 가락이 너무 아름다워 오늘날 독주곡으로도 곧잘 연주된다.
본래의 희곡에서는 이 곡이 없었지만 기로가 비제의 '아름다운 퍼드의 아가씨'중에서 발췌하여 이 모음곡에 넣은 것이다. 희극 제3막 2장 중에 연주되는 유명한 미뉴에트로 플루트와 하프의 연주가 아름답다. 플루트 연주 레퍼토리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고 있는 유명한 작품이다.
4. Farandole in D Minor, Allegro dechisso, - D Major Allegro vivo e dechisso
- 화랑돌(Farandole) : 민요 ' 세 임금님의 행진 ' 과 화랑돌(프로방스 지방 농민의 춤곡)을 한데 엮은 곡이다. 알레그로 데치소 , D 단조, 4분의4박자. 전 합주로 힘차게 '세 임금님의 행진'을 연주하지만 제 1 조곡때보다 성격이 밝고 위세 당당하다. 카논풍으로 발전되다가 다음의 알레그로 비보 애 데치소, D 장조 , 4분의 2 박자로 옮겨간다. 여기서 부터는 화랑돌이며 프로방스 큰 북이 리듬을 새겨 나가고 그위로 풀룻과 클라리넷의 뜨거운 선율이 흐른다. 그리고 차츰 거친 흥분이 고조된다. 끝은 화랑돌과 '세 임금님의 행진'이 겹치면서 열광적인 클라이막스를 이룩한다.
희극 제3막에서 파랑돌 무곡에 맞추어 춤을 추는 마을 사람들과 민요 합창 '세 임금의 행렬'을 조합해서 관현악으로 편곡한 것이다. 투티로 힘있게 '세 임금의 행렬'의 테마가 나타난 후 카논 풍의 전개를 한다. 파랑돌 테마가 D장조 2/4박자로 큰북의 리듬위로 나타나면서 이 2개의 테마가 찬란한 절정을 이룬다. 비베트와 결혼을 결심하고 약혼 축제까지 하게 되지만 결혼 전날 아를과 미티피오의 다정스런 모습을 보는 순간 옛 정이 되살아나 그를 질투한 나머지 창고의 창에서 뛰어내려 자살하고 만다.
Georges Bizet 비제(Georges Bizet, 1838-1875)
성악 교사인 부친과 피아니스트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부유한 음악적 환경에서 자라면서 일찍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 4세 때부터 아버지에게 피아노 악보, 문자 읽는 법을 익혀 뛰어난 기억력과 음악적 재능으로 9세 때에는 파리 국립음악원에 입학해서 피아노와 오르간 부문에서 우등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는 그곳에서 화성법과 푸가, 작곡을 배워 1857년에 '로마대상'을 수상하였고, 그의 피아노 솜씨는 당대의 거장 리스트(Franz Liszt, 1811-1886)의 칭찬을 받을 정도로 뛰어났으며 로마에서 귀국한 1860년 이후에는 극음악 작곡에 몰두하였다.
25세 때 발표한 오페라 '진주잡이(Les Pecheurs de Perles)'는 약간의 관심을 끌었을 뿐이었고, 34세에 쓴 극음악 '아를르의 여인(L'Arlesienne)'으로 처음 빛을 보게 되었다. 하기도 한다. 작품은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 1840-1897)의 희곡을 가지고 만든 것으로, 나중에 8곡만 추려 연주회용의 제1, 2모음곡으로 만들어졌다.
비제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오페라 '카르멘(Carmen)'은 1875년 3월 3일, 파리의 오페라 코믹 극장에서 초연 되었는데 도둑떼, 집시, 비천한 연초공장 여직공들이 등장하고, 칼부림하며 시체가 뒹구는 등 그 내용이 당시 귀족들의 취향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하여 실패하게 된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카르멘의 참신한 소재와 혁신적 기법이 기존의 신화나 전설, 귀족들의 낭만적 이야기로만 이루어져 있던 오페라계에 일대 새바람을 불러 일으켰음은 물론 일반 대중들에게는 큰 호응을 얻게 되었다.
비제는 카르멘이 초연 되고 3개월이 되는 6월 3일에 결핵성 호흡기 질환의 악화로 죽게 되는데 어떤 이는 비제의 죽음이 심혈을 다해서 작곡한 카르멘의 실패에서 비롯되었다고 하고 있으며, 그의 재능이나 투지를 높게 평가해 모짜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만큼이나 아깝게 요절한 작곡가로 평가..